"연극을 떠나 영화를 시작할 때, 나는 그저 먹고 살 수만 있기를 바랐습니다."2026년 5월,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트로피를 든 한 배우가 그렇게 말했다. 객석이 잠깐 조용해졌다. 화려한 수상 소감이 아니었다. 그건 고백에 가까웠다. 먹고 살 수만 있기를. 그 한 문장 안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던 단역의 시간이, 버스비를 아껴 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던 옥탑방의 겨울이 통째로 들어 있었다.그의 이름은 유해진이다. 소년, 광대를 보다1970년 충북 청주. 한 소년이 극장에서 배우를 본다.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우리들의 광대〉. 무대 위 단 한 사람이 객석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그 광경에, 소년은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하지만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연극영화과 입시에 세 번..
“영화는 가장 값싼 사치였다.” 언젠가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사치마저 망설여진다. 극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을 사랑한다. 스크린에 빛이 차오르고, 옆자리에서 팝콘 봉지가 바스락거리고, 예고편의 저음이 의자를 타고 등으로 올라오는 그 짧은 정적. 그 한 번의 의식(儀式)을 위해 우리는 기꺼이 표를 끊었다.그런데 어느새 1만 5천 원. 가족 넷이면 6만 원. 거기에 팝콘과 음료까지 더하면, ‘값싼 사치’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일이 작은 결심이 되어버린 시대.그래서 이 소식을, 리뷰가 아니라 ‘안내’의 형식으로 먼저 전한다. 정부가 영화 관람료를 한 장당 6,000원 깎아주는 「국민 영화관람 6천원 할인권」을 풀었다. 잘만 챙기면 영화 한 편을 단돈 4,00..
"유치하다고 흉보는 입꼬리가, 이미 올라가 있었다." 극장의 불이 꺼지고 90년대의 비트가 울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직감했다. 아, 이 영화는 머리로 보는 영화가 아니구나. 스크린에서 촌스러운 무대 조명이 쏟아지고, 객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참지 못하고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전염병처럼 번졌다. 한쪽 객석은 박장대소, 다른 한쪽은 고요. 같은 극장, 같은 장면인데 공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기묘한 경험. 〈와일드 씽〉은 그렇게, 관객의 '시절'을 시험하는 영화다. 영화 정보구분내용제목와일드 씽 (Wild Sing, 2026)감독손재곤출연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장르코미디러닝타임107분개봉2026년 6월 3일배급롯데엔터테인먼트참고로 영문 제목이 'Wild Thing'이 아니라 'Wild..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고 했던가. 그러나 매가 사라진 자리에, 우리는 무엇을 세워야 하는가." 분필 가루가 가라앉지 않은 교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온 빛이 엎어진 책상 위에 길게 누워 있다. 누군가는 이곳을 전쟁터라 부르고, 누군가는 여전히 이곳을 학교라 부른다. 넷플릭스 〈참교육〉은 바로 그 경계 위에서 시작한다. 무너진 교권, 사라진 질서, 그리고 그 폐허로 단신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 사람의 뒷모습.통쾌하다. 그리고 동시에, 어딘가 불편하다. 이 두 감정이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한다는 것 — 그것이 〈참교육〉이라는 시리즈의 가장 정직한 얼굴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8C7wXGMM-Q 작품 정보항목내용 제목참교육 (Teach You a Lesson)공..
세상은 굴뚝의 연기 색으로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을 읽는다. 검은 연기는 침묵이고, 흰 연기는 새 이름이다. 그런데 그 연기 너머,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어떤 색이었을까.오래전, 가톨릭 신자로서 이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처음 보았던 밤을 기억합니다.그때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생존해 계신 이 두 분을 영화는 어떻게 그렸을까."그 문장이, 지금은 아립니다.베네딕토 16세는 2022년 마지막 날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봄의 부활절 다음 날에 — 두 분 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화면 속에서 피자를 나누고 축구 중계를 함께 보던 두 사람은, 이제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그래서 다시 본 〈두 교황〉은, 5년 전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습니다.그때는 '권력의 대화'였습니..
"10년 만의 칸, 그리고 부산행이라는 그림자"연상호 감독이 돌아왔다. 그것도 〈부산행〉(2016)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칸 영화제 레드카펫 위로.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군체〉는 월드 프리미어 상영 후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베일을 벗었고, 국내에서는 5월 21일 개봉 후 4일 만에 누적 관객 100만을 돌파했다. 2026년 개봉작 중 최단 기록이다. '왕과 사는 남자'보다 빠른 속도다.그런데 흥미로운 건 칸 직후 감독 본인이 한 인터뷰에서 토로한 한 마디였다. "이제 다들 나를 〈부산행〉 만든 사람으로만 본다. 그 기대감이 엄청난 부담이었다." — 솔직히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마주하는 두 시간 내내, 그 부담감이 작품 곳곳에서 비집고 나오는 게 느껴졌..
영화를 보고 나온 길, 같이 간 아들이 한마디를 던졌다."다른 공포영화랑 달라. 알싸하게 매운 맛이야." 이 말이 너무 정확해서 한참을 곱씹었다. 보통 공포영화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맵다", "짜다", "쎄다" 같은 것들이다. 〈곤지암〉처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드는 자극, 〈컨저링〉처럼 강렬한 한방. 그런데 〈살목지〉는 그 결이 다르다. 한 입 베어물면 매운 게 아니라 혀끝이 알알하게 마비되는 느낌, 시간이 지나도 입안에 그 기운이 남아 있는 그런 맛. 영화관을 나와 차에 올라타고 한참 운전을 하는데도 살목지의 검은 물 표면이 자꾸 떠올랐다.오랜만에 한국 공포영화가 제대로 한 건 했다. 손익분기점 80만, 그런데 300만을 넘어버린 영화먼저 숫자부터 짚고 가자. 제작비 30억 원 — 웬만한 한국 공포영..
앙투안 후쿠아 감독, 존 로건 각본 / 자파 잭슨 주연 / 2026년 4월 개봉 극장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명백한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그만큼 또렷한 아쉬움이다. 이 영화는 그 둘을 분리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이 글도 그 두 감정 사이를 오가며 쓸 수밖에 없다.1. 팬으로서, 그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된다는 것가장 솔직한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이 영화의 음악 장면에서 행복했다.스크린에서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의 인트로가 흐르고, 〈Billie Jean〉의 그 베이스 라인이 깔리고, 〈Beat It〉의 기타가 터질 때, 나는 영락없는 팬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잘 만든 음향 시스템으로, 큰 화면 앞에서, 그의 음악을 처음 ..
"이 세상 그 무엇도 끈기를 대신할 수 없다."— Ray Kroc의 사무실에 걸려 있던 한 줄.어떤 영화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본다.또 어떤 영화는, 강의실의 형광등 아래 학생들과 함께 본다.「파운더」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다.스크린이 꺼지고 나면, 박수보다 먼저 메모장이 펼쳐지는 영화.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묻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창업이라는 두 글자를 진지하게 마주해 본 사람이라면,이 영화의 어느 한 장면 앞에서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영화 정보제목 : 파운더 (The Founder)감독 : 존 리 핸콕 (John Lee Hancock)각본 : 로버트 D. 시걸 (Robert D. Sie..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넌 영원한 나의 앤디야"— 나이젤오후의 극장은 비어 있었다.객석 한가운데에 앉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열 명 남짓의 관객.전 세계 최초 개봉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4월의 평일 오후는 고요했다.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예전같지 않은 영화관의 풍경이지만 왠지 오늘의 빈 영화관의 공기는나쁘지 않았다.스크린 위에서는 화려한 런웨이가 펼쳐지고,객석에서는 빈 의자들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이 거리감 자체가, 이미 영화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영화는 종이 잡지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이야기다.화면 안과 밖의 풍경이 묘하게 겹쳐졌다.영화 정보제목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The Devil Wears Pr..
"나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어떤 영화는 보고 난 뒤,한참을 글이 되지 못한 채 마음에 머문다.「왕과 사는 남자」가 내겐 그런 영화였다.개봉 당일, 부모님을 모시고 극장에 갔다.노부모의 옆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는 일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작은 풍경이 된다.객석의 불이 꺼지고, 청령포의 강물이 화면 위로 흘러갈 때,나는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영화를 보는 부모님의 옆얼굴을 자꾸만 바라보았다.그 두 겹의 시간을 글로 옮기는 일이쉽지 않아, 리뷰가 자꾸 늦어졌다.영화 정보제목 : 왕과 사는 남자감독 : 장항준출연 :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김민, 이준혁장르 : 사극 드라마러닝타임 : 117분개봉 : 2026년 2월 4일누적 관객 : 1,663만 명 (역대 한국영화 흥행 2위)수상 · 후보 : 제62..
"넘어지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어쩌면 슬픈 일이 아니라,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서울의 어느 반지하.전기세 고지서가 식탁 위에 두 장 겹쳐 있고,핸드폰은 좀처럼 울리지 않는다.울리더라도, 합격 통보는 아니다.부산에서 올라온 사내가 또 오디션장 앞에 선다.대사는 자꾸 꼬이고,서울말은 자꾸 더 꼬이고,연애도 밀당에 밀린다.그의 이름은 짱구다.어쩌면, 짱구라는 이름의 어떤 시절이다.영화 정보제목 : 짱구감독 : 정우, 오성호 공동 연출각본 · 제작 · 주연 · 삽입곡 가창 : 정우출연 : 정우, 정수정, 신승호, 조범규, 현봉식개봉 : 2026년 4월 22일선공개 :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 스페셜 프리미어'계보 : 영화 「바람」(2009)의 정신적 후속작99번 넘어지고, 100번째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