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후쿠아 감독, 존 로건 각본 / 자파 잭슨 주연 / 2026년 4월 개봉




극장을 나서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명백한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그만큼 또렷한 아쉬움이다. 이 영화는 그 둘을 분리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이 글도 그 두 감정 사이를 오가며 쓸 수밖에 없다.
1. 팬으로서, 그의 노래를 다시 듣게 된다는 것
가장 솔직한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이 영화의 음악 장면에서 행복했다.
스크린에서 〈Don't Stop 'Til You Get Enough〉의 인트로가 흐르고, 〈Billie Jean〉의 그 베이스 라인이 깔리고, 〈Beat It〉의 기타가 터질 때, 나는 영락없는 팬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잘 만든 음향 시스템으로, 큰 화면 앞에서, 그의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다시 듣는 경험은 그 자체로 값졌다. 영화가 가진 거의 모든 미덕은 이 지점에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음악을 몸으로 옮겨낸 자파 잭슨(Jaafar Jackson)을 빼놓을 수 없다. 마이클의 친조카가, 삼촌의 무대 호흡과 동선, 그 특유의 무게중심을 재현해내는 장면들은 단순한 흉내를 넘어선다. 비평가들조차 거의 만장일치로 그의 연기만큼은 인정했는데, 영화를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스크린 위의 그를 보고 있으면, 이게 재현이라는 사실을 잠깐씩 잊게 된다. 〈Beat It〉 시퀀스, 무대를 가로지르는 그 몇 걸음에서 나는 객석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문제는, 영화가 잘하는 것이 거의 여기서 끝난다는 점이다.


2. 1988년에서 멈춰 선 영화 — 지워진 그의 인생들
이 영화의 가장 큰 선택이자 가장 큰 한계는 시간의 범위다. 〈마이클〉은 1966년 아버지 조셉이 아들들을 모아 잭슨 5를 결성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1980년대 후반 'Bad' 투어 무대에서 끝난다. 마지막 자막은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His Story Continues)"였다. 즉, 영화는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상승기만을 도려내어 보여준다.
팬의 입장에서, 나는 이 선택이 만들어낸 '부재'들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별명. 마이클을 평생 따라다니며 그를 깎아내린 그 모욕적인 타블로이드 호칭, 그가 인격적으로 모독당했던 그 단어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나올 수가 없다. 영화가 1988년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그 별명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시기, 언론이 그를 조롱거리로 소비하기 시작한 그 시기 자체를 영화는 통째로 비워 둔다.
그를 둘러쌌던 수많은 허위 추문들. 산소 캡슐, 코끼리 인간의 뼈, 동물원 — 마이클이 직접 부인했거나, 일부는 그 자신이 미디어를 시험하려고 흘렸다고도 전해지는 그 기괴한 이야기들.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한 인간을 잠식해 갔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를 이해하는 데 결코 부차적이지 않다. 그러나 영화는 그 모든 것이 시작되기 직전에 막을 내린다.
마지막 다큐멘터리, 그리고 기자의 배신. 그가 신뢰를 내어주었던 한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 친밀함을 끝내 그를 무너뜨리는 데 사용했던 그 사건 — 마이클의 후반생을 결정지은 그 배신의 드라마는 이 영화의 시야에 아예 들어오지조차 않는다. 2000년대의 일이고, 영화는 1980년대에서 끝나니까.
여기서 핵심을 짚고 싶다. 이 부재들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라 구조적 선택의 결과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의 삶에서 고통과 논란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만 그린다. 영화가 끝나는 그 지점이 곧, 우리가 마이클을 진짜로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사실 — 그 잔인한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완성이다. 실제로 제작 과정에서 1993년 소송을 다룬 3막이 통째로 폐기되고 재촬영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졌는데, 합의서의 한 조항이 특정 인물을 영상물에 묘사·언급하는 것 자체를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영화가 1988년에서 멈춘 것은 미학적 결단이라기보다 법적 사정에 떠밀린 결과에 가깝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마지막 자막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가 약속처럼 들리기보다 변명처럼 들렸다.


3. 마이클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여성들의 부재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물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두 여성이 있다. 이 영화에는 둘 다 사실상 없다.
자넷 잭슨. 마이클과 자넷의 관계, 그 경쟁과 애정과 가족 안에서의 복잡한 위치는 그의 삶을 설명하는 핵심 축 중 하나다. 그러나 자넷은 이 영화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녀 본인이 참여를 고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반에 등장할 법한, 두 사람을 둘러싼 음악사적 사건들은 자연히 영화에 들어올 자리를 잃었다.
다이애나 로스. 더 뼈아픈 쪽은 이쪽이다. 캣 그레이엄이 다이애나 로스 역으로 캐스팅되어 실제로 촬영까지 마쳤지만, 그녀의 장면은 "법적 고려 사항"을 이유로 영화에서 전부 삭제됐다. 배우 본인이 직접 이 사실을 밝혔다. 단순히 한 인물이 빠진 게 아니다. 다이애나 로스가 사라지면서, 마이클의 초기 인생에서 결정적이었던 한 연결고리 — 영화 〈위즈(The Wiz)〉에 함께 출연하며 그가 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 그 길목 — 자체가 영화에서 거의 통째로 흐려졌다.
그 "한 인물"이 누구냐 하면, 다음 이야기로 이어진다.
4. 퀸시 존스 — 한 줄로 요약되어 버린 음악사의 한 챕터
마이클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퀸시 존스(Quincy Jones)를 빼는 것은, 절반만 말하는 것이다. 〈Off the Wall〉, 〈Thriller〉, 〈Bad〉 — 우리가 사랑하는 그 사운드의 상당 부분이 두 사람의 만남에서 나왔다.
영화에 퀸시 존스는 나온다. 켄드릭 샘슨이 연기한다. 1978년 마이클이 솔로 음반을 위해 에픽 레코드와 계약하고 퀸시가 프로듀싱을 맡는 흐름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두 사람이 어떻게,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 바로 그 〈위즈〉 현장에서 인연이 시작됐다는 그 결정적 출발점이 영화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앞서 말한 다이애나 로스 장면 삭제와 〈위즈〉 누락이, 결국 이 전설적인 아티스트-프로듀서 듀오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영화가 설명하지 못하게 만든 셈이다.
그 결과 퀸시와의 관계는 음악사의 한 사건이 아니라, 줄거리를 진행시키기 위한 한 줄짜리 정보처럼 처리된다. 팬으로서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가장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5. 변곡점들이 사라진 자리
좋은 전기영화는 인물의 인생에서 '여기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마이클의 변곡점 상당수를 비워 두거나, 사실관계를 매끄럽게 손본다.
마이클이 비틀즈의 음반 판권 상당량을 사들였던 그 유명한 결정 — 음악 산업과 그의 인생 모두를 바꾼 사건 — 은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코 성형과 백반증의 시간선도 실제와 다르게 재배열되어 있고(코 수술 시점, 백반증 진단 시점 등), 에픽 계약 시기도 실제(1975년)와 어긋난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각색들이 쌓이면 결국 영화 속 마이클은 '실제로 그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그를 어디로 데려갔는가'를 잃어버린, 매끈하지만 평면적인 인물이 된다.
영화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히 느껴진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 보호적이어서, 인물을 입체로 만들어 줄 마찰과 모순과 대가까지 함께 깎아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를 무대 위에서 빛나게 한 그 모든 것은 보여주면서, 그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무엇을 치렀는지는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6. 로튼 토마토, 비평가와 관객이 이토록 갈린 이유
이 영화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평가의 극단적인 분열이다. 비평가 지수는 30%대 후반에서 40% 안팎에 머무른 반면, 관객 지수는 96~97%에 달했다. 뮤지컬 전기영화 사상 최고 수준의 관객 점수였다. 한쪽에서는 올해 최악으로 평가받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역대급 환호를 받은 것이다. 흥행 성적은 후자에 가까웠다 — 전 세계 7억 달러를 넘기며 2026년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영화가 됐다.
이 간극은 우연이 아니라, 두 집단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비평가들의 비판은 거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줄거리를 찾아 헤매는 재생목록"이라는 것. 그들은 영화에 없는 것을 본다. 빠진 논란, 빠진 그늘, 빠진 인물들, 평면화된 인생. 한 평자는 이 작품을 "유족이 제작한, 1988년 이전 히트곡 모음집"이라고 못 박았다. 비평가들이 보기에 이 영화는 자기 주인공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는, 성인(聖人)으로 그려낸 헌정 공연에 가깝다.
반면 관객 — 특히 팬 — 은 영화에 있는 것을 본다. 다시 듣는 음악, 자파 잭슨의 경이로운 무대, 한 시대의 빛. 흥미롭게도 한 마이클 잭슨 전기 작가는, 〈보헤미안 랩소디〉나 〈로켓맨〉, 〈엘비스〉 같은 다른 음악 전기영화들도 비슷하게 미화됐는데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마이클〉만 유독 '들어 있지 않은 것' 때문에 표적이 됐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두 시간짜리 영화에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담으라는 요구가 공정하냐는 항변이다.
나는 양쪽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정체를 말해 준다. 〈마이클〉은 잘 만든 헌정 공연이지, 한 인간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팬에게는 충분히 즐거운 두 시간이지만,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그가 누구였는지를 절반만 알려주는 영화다.




그래서, 이리저리 즐겁고 또 아쉬운
정리하자면 이렇다.
팬으로서 나는 그의 노래를 큰 화면과 큰 소리로 다시 만난 것이 진심으로 좋았고, 자파 잭슨이라는 발견에 감탄했다. 그 시간은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나 그가 싫어했던 별명도, 그를 짓눌렀던 허위 추문도, 그를 배신한 마지막 다큐멘터리의 그 기자도, 자넷도, 다이애나 로스도, 퀸시와의 진짜 시작도 — 그를 그답게 만든 변곡점들이 영화에는 거의 들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들의 상당 부분은 영화가 1988년에서 멈춰 서기로 했기 때문에, 혹은 법적 사정에 떠밀렸기 때문에 생긴 구조적 공백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마지막 자막은, 속편을 예고하는 동시에 이 영화가 끝내 다 말하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문장처럼 보였다. 정말로 그의 이야기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다음 편은 빛이 아니라 그늘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가 어떤 별명에 상처받았고, 어떤 거짓에 시달렸고, 누구의 카메라 앞에서 무너졌는지를 말할 용기가 없다면, 그 속편 역시 또 한 편의 잘 만든 재생목록에 그칠 테니까.
이리저리 즐거웠고, 그만큼 이리저리 아쉬웠다. 이 영화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한 줄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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