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황(The Two Popes)〉 — 두 분 다 떠난 자리에서, 비로소 들리는 화음

세상은 굴뚝의 연기 색으로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을 읽는다. 검은 연기는 침묵이고, 흰 연기는 새 이름이다. 그런데 그 연기 너머,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어떤 색이었을까.


오래전, 가톨릭 신자로서 이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처음 보았던 밤을 기억합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생존해 계신 이 두 분을 영화는 어떻게 그렸을까."

그 문장이, 지금은 아립니다.

베네딕토 16세는 2022년 마지막 날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봄의 부활절 다음 날에 — 두 분 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화면 속에서 피자를 나누고 축구 중계를 함께 보던 두 사람은, 이제 둘 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시 본 〈두 교황〉은, 5년 전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권력의 대화'였습니다. 지금은 '두 영혼의 작별'입니다.

 


다시 보게 된 계절

거실의 불을 끄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극장의 어둠과는 다른, 조금 더 사적인 어둠이었습니다.

화면이 켜지자 익숙한 정원이 나오고, 두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라틴어와 독일어와 스페인어와 영어가, 그리고 그 사이의 침묵이.

가톨릭신자로서 교황은 매우 의미있는 분입니다.

그러하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그 느낌이 다시 봤을때와 같을지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 모든 정보가 이미 몸에 들어와 있어서, 오히려 두 사람의 얼굴만 보였습니다. 늙어가는 두 남자의 주름, 망설임, 그리고 끝내 내려놓는 표정만.

지금 이 글을 다시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요즘처럼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절멸의 대상으로 여기는 아사리 판국 속에서 이 영화는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도, 정치도, 세계관도 정반대인.

그런데 그들은 서로를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용서하려 합니다.


영화 정보

제목 두 교황
원제 The Two Popes
공개 2019년 (텔루라이드 영화제 / 넷플릭스 스트리밍 12월)
감독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Fernando Meirelles)
각본 앤서니 맥카튼 (Anthony McCarten) — 자신의 희곡 〈The Pope〉 각색
출연 안소니 홉킨스(베네딕토 16세), 조나단 프라이스(베르고글리오/프란치스코), 후안 미누힌(청년 베르고글리오)
음악 브라이스 데스너 (The National)
촬영 세자르 샤를로네
장르 전기 / 드라마
러닝타임 125분
관람 플랫폼 넷플릭스

줄거리 — 두 번의 흰 연기 사이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합니다.

세계 각국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콘클라베를 엽니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오직 투표와 기도만으로 다음 베드로의 후계자를 정하는 자리.

여기서 보수의 상징, 독일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선출됩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의외의 인물이 두 번째로 많은 표를 받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 훗날의 프란치스코입니다.

시간이 흘러 2013년. 교회의 방향에 깊은 회의를 느낀 베르고글리오는 사임을 청하기 위해 로마로 향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를 부른 베네딕토는, 사임 이야기를 자꾸만 다른 데로 돌립니다. 음악, 텔레비전, 축구 같은 사소한 잡담으로.

 

 

두 사람은 부딪힙니다. 전통이냐 변화냐. 교회는 세상을 향해 문을 닫아야 하는가, 열어야 하는가.

논쟁은 날카롭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따뜻해집니다.

그 사이 영화는 베르고글리오의 과거를 펼쳐 보입니다.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동료 사제들을 끝내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 그로 인한 추방과 단절. 평생을 짓눌러온 무게.

그리고 놀랍게도, 보수의 화신처럼 보였던 베네딕토가 — 그 무게를 위로하고 용서합니다.

동시에 그는 고백합니다. 자신은 더 이상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겠노라고. 그래서 물러나고 싶노라고.

 

이 만남 1년 뒤, 베네딕토는 약 600년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교황이 되고, 베르고글리오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즉위합니다.

영화 후반, 두 사람이 2014년 월드컵 독일-아르헨티나 결승전을 함께 보며 피자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이건 픽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이기도 하지요.

 


배우 — 닮음을 넘어선 빙의

안소니 홉킨스가 베네딕토 16세를 연기합니다. 싱크로율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그는 라칭거의 차가운 지성과, 그 안에 숨은 외로움과 두려움까지 함께 끌어냅니다.

조나단 프라이스의 베르고글리오는 더 놀랍습니다. 실제 프란치스코 교황과 외모부터 묘하게 겹치는데, 거기에 그 특유의 소탈함과 장난기, 그리고 깊은 죄의식까지 입혔습니다.

 

 

두 배우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프라이스)과 남우조연상(홉킨스) 후보에 나란히 올랐습니다. 각본상까지 합쳐 3개 부문 후보. (원글에서 제가 "각본상 수상"이라고 적었는데, 정확히는 수상이 아니라 후보였습니다. 다시 보며 바로잡습니다.)

청년 시절 베르고글리오를 연기한 후안 미누힌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군부독재 챕터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 배우니까요.


감독 — 페르난두 메이렐리스라는 보증수표

브라질 출신의 페르난두 메이렐리스 감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시티 오브 갓〉(2002) — 빈민가의 폭력을 날것의 리듬으로 담아낸 걸작
  • 〈콘스탄트 가드너〉(2005) —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묵직한 정치 스릴러
  • 〈눈먼 자들의 도시〉(2008) — 주제 사라마구 원작의 디스토피아
  • 〈두 교황〉(2019)

그는 이 영화를 "화해와 용서에 관한 명상"이라 불렀습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죄책감을 털어놓고, 자신을 용서하고, 끝내 서로를 용서하는 이야기라고요.

핸드헬드 카메라의 흔들림, 다큐멘터리 같은 질감,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을 재현한 압도적 미장센. 정적인 대화극이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은 건 전적으로 그의 연출 덕입니다.


다시 본 뒤에 남는 것

물론 이 영화에 비판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의 아동 성학대 스캔들을 너무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는 지적이 대표적이지요. 베네딕토가 그 사안에서 너무 쉽게 면죄부를 받는다는 비판은, 다시 봐도 타당합니다. 이 영화는 분명 두 사람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는 픽션이고, 그 다정함이 때로 현실의 무게를 흐립니다.

그럼에도.

다시 본 〈두 교황〉이 내게 남긴 건,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습니다.

처음 이 글을 쓸 때 나는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보수와 진보. 이 두 교황의 모습을 보면, 어쩌면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5년이 지난 지금, 두 분은 모두 떠나셨고, 그 자리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른다는 새 교황 레오 14세가 앉았습니다. 그는 "일치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안에서의 굳건하고 깊은 교감"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 자리에 올랐습니다.

영화가 던진 질문에, 현실이 답을 이어 쓰고 있는 셈입니다.

서로를 향해 굴뚝의 검은 연기만 피워 올리는 시대에, 이 영화는 묻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끝까지 마주 앉아 본 적이, 당신에겐 있습니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 용서하기 위해서.

 

 

종교를 떠나, 진지한 영화 한 편이 고픈 밤. 넷플릭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줄거리가 아니라, 두 사람의 얼굴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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