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 침묵의 건축가 - 말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영화

"침묵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침묵은 나에게 위안이며,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 드니 빌뇌브, 〈Little White Lies〉 인터뷰 中

 

 

스크린이 어두워지고,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시작이 아니다. 시작 이전이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늘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극장 안의 공기가 자기 자신의 호흡을 의식하기 시작할 때, 그제야 그의 영화가 시작된다. 모래가 흩날리거나, 우주선이 정지하거나, 외계 생명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그 모든 결정적 순간에 빌뇌브는 말을 빼앗는다. 우리에게서, 그리고 자신의 인물들에게서.


1.  「나는 대사를 증오한다」

2024년 2월, 〈Dune: Part Two〉의 개봉을 앞두고 빌뇌브가 영국 〈더 타임스(The Times of London)〉와 마주 앉았다. 그가 던진 한 문장이 며칠 만에 전 세계 영화 커뮤니티를 들끓게 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대사를 증오한다. 대사는 연극과 텔레비전을 위한 것이다. 나는 좋은 대사 때문에 영화를 기억하지 않는다.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영화를 기억한다."

 

 

뒤이어 그는 한층 도발적인 문장을 덧붙였다. "영화는 텔레비전에 의해 부패되었다(Movies have been corrupted by television)."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SNS에서 비명을 질렀다. 〈CNN〉의 칼럼니스트는 "대사 한 줄이 영화를 정의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며칠 뒤 빌뇌브는 〈Sharp Magazine〉을 통해 한 발 물러섰다.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나는 대사를 증오하지 않는다. 다만, 내 영화에서는 대사로 과도하게 채워진 장면에 영감을 받지 않을 뿐이다."

해명이라기보다는 재확인이었다.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빌뇌브는 진심이었다. 다만 미디어가 그것을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단순화했을 뿐이다.

같은 해 10월, BFI 런던영화제의 마스터클래스에서 그는 더 정제된 문장으로 다시 말했다. "나는 대사를 사랑한다. 다만 영화에서는 아니다. 언젠가 단 한마디의 발화도 없는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2. 세인트로렌스강에서 사막까지

빌뇌브는 1967년 퀘벡 트루아리비에르에서 태어났다. 그가 자란 곳은 세인트로렌스강 옆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강가에서 명상하듯 수평선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Little White Lie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미학적 원풍경을 이렇게 회상한다.

 

 

"겨울의 수평선에는 어떤 닮음이 있다. 영혼에 무언가를 새겨놓는 풍경. 내가 사막에 깊이 끌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사막의 공허함 — 그 무한함은 일종의 거울이다. 자신의 겸손, 자신의 자리, 자신의 단독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거울."

 

 

그래서일 것이다. 그가 평생을 두고 천착해온 풍경이 결국 사막이라는 것은. 〈Sicario〉의 멕시코 국경 사막, 〈Blade Runner 2049〉의 주황빛 라스베이거스 폐허, 그리고 마침내 〈Dune〉의 아라키스까지. 빌뇌브의 카메라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사람이 사라진 자리, 말이 의미를 잃는 자리다.

 

K(라이언 고슬링)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 이미지출처(FILMGRAB)

 

사막은 침묵의 형식이다. 그리고 빌뇌브에게 침묵은 결핍이 아니다. 존재의 한 양식이다. 그의 인터뷰 곳곳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mirror(거울)'다. 침묵은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고, 사막은 그 거울의 가장 거대한 형태다.


3. 사운드가 음악이 되고, 침묵이 사운드가 될 때

빌뇌브 영화의 사운드 디자인 팀에는 오랜 원칙이 하나 있다. "음악은 정말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Blade Runner 2049〉의 편집자 조 워커(Joe Walker) (빌뇌브의 거의 모든 영화를 편집한 인물)는 이렇게 설명한다. "〈Sicario〉와 〈Arrival〉에서 우리는 음악을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쓰려고 했다. 사운드 이펙트와 침묵, 그리고 대사가 그 자체로 음악이 되도록."

이른바 "음악적 사운드 이펙트(musical sound effects)" 라는 작법이다. 음악과 효과음의 경계가 흐려질 때, 침묵 또한 하나의 악기로 격상된다.

이 작법을 함께 완성한 또 한 사람의 이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요한 요한손(Jóhann Jóhannsson). 〈Prisoners〉〈Sicario〉〈Arrival〉을 거치며 빌뇌브와 음악적 동지였던 아이슬란드 작곡가는, 2018년 〈Blade Runner 2049〉의 작업을 그만둔 직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스코어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게 깔리거나, 어느 순간 지축을 흔들 만큼 폭발했다. 그 사이의 광막한 공간이 바로 빌뇌브의 영토였다.

〈Blade Runner 2049〉의 사운드 슈퍼바이저 마크 망기니(Mark Mangini)는 더 분명하게 정리했다. "데니스는 매우 옳게도, 침묵 또한 강조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사운드 디자이너 테오 그린(Theo Green)이 회상한 빌뇌브의 지시는 인상적이다. 라스베이거스의 디스토피아 도시는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조용해진다. 지상의 BiBi 바는 광고와 소음으로 폭격당하지만, 카메라가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도시는 거의 선(禪)에 가까운 정적에 잠긴다. 사회경제적 계층이 곧 음향적 계층이 된다. 침묵은 권력이고, 또한 부재다.

이는 한스 짐머와 벤자민 월피쉬의 〈Blade Runner 2049〉 스코어가 종종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작게" 깔린다는 비판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비판이야말로 빌뇌브가 노린 효과의 부산물일 것이다. 음악이 사라진 자리에서, 관객은 자신의 호흡을 듣는다.


4. 인물의 침묵 — 빌뇌브의 주인공들은 왜 말이 적은가

빌뇌브의 카메라 앞에 선 인물들은 한결같이 입이 무겁다.

〈Prisoners〉(2013)의 켈러 도버(휴 잭맨)는 딸의 실종 앞에서 분노를 말 대신 손과 몸으로 옮긴다. 그의 가장 깊은 감정은 언제나 말로 옮겨지지 못한 채 비명과 짐승 소리로 새어 나온다.

〈Sicario〉(2015)의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는 영화 내내 질문만 던지지만 답을 얻지 못한다. 그녀의 침묵은 무지가 아니라 거절당한 자의 침묵이다. 정보로부터, 의미로부터, 권력으로부터 거절당한 사람의 다물어진 입.

〈Arrival〉(2016)의 루이즈(에이미 아담스)는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해독하면서, 역설적으로 인간의 언어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시간과 언어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결정의 순간 그녀는 말없이 결정한다. 우리는 끝까지 그녀의 내면을 다 알지 못한다.

 

이미지:네이버영화

 

〈Blade Runner 2049〉(2017)의 K(라이언 고슬링)는 영화의 거의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에 대해 한마디도 발화하지 않는다. 그의 침묵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복제인간의 침묵, 혹은 끝내 인간이 되지 못한 자의 침묵이다. 눈송이 위에 누워 영화가 끝날 때,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또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리고 〈Dune〉(2021)과 〈Dune: Part Two〉(2024)의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 그는 점차 침묵하는 법을 배운다.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결국 말을 잃는다는 것이다. 황제가 된 자는, 끝내 말하지 않는 자가 된다.

빌뇌브의 인물들은 말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침묵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한 채 영화관을 나선다. 그리고 그 알 수 없음이, 영화를 오래도록 우리 안에 머물게 한다.


5. 〈Dune: Messiah〉를 향하여 — 침묵의 종착지

2026년 12월 18일, 〈Dune: Part Three〉(또는 〈Dune: Messiah〉)가 개봉한다.

빌뇌브가 「폴 아트레이데스 3부작」의 최종장이라 부른 작품. 그가 직접 "내 마지막 〈Dune〉이 될 것"이라 못 박은 영화. 2025년 11월 11일에 촬영이 완료되어,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같은 날 마블의 〈Avengers: Doomsday〉가 개봉한다는 사실은, 이미 평단에서 'Dunesday'로 회자되고 있는 흥미로운 풍경이다.

 

네이버영화

 

〈Part Two〉의 결말로부터 12년 후를 다루는 이번 작품에는 티모시 샬라메, 젠데이아, 플로렌스 퓨, 레베카 퍼거슨이 돌아오고, 로버트 패틴슨, 안야 테일러조이, 자비에르 바르뎀 등이 새로 합류했다. 음악은 다시 한스 짐머, 편집은 조 워커가 맡았다.

흥미로운 것은 빌뇌브의 발언이다.

"원작에서 허버트가 그랬듯, 이번에도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세계이지만 새로운 영화다."

 

원작 『Dune Messiah』(1969)는 허버트의 듄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침묵에 가까운 책이다. 폴은 더는 영웅이 아니고, 환상은 거두어지고, 권력의 무게가 모든 것을 짓누른다. 액션은 줄고 명상이 늘어난다. 블록버스터의 문법과는 정반대다. 빌뇌브 본인도 이번 작품이 3부작 중 가장 짧은 러닝타임이 될 것이라 예고했다.

빌뇌브에게 이보다 더 맞춤한 텍스트가 있을까. 「말을 거부하는 감독」이 「말을 잃어가는 황제」를 그릴 때, 그 화면 위에 어떤 정적이 내려앉을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가 평생을 향해 걸어온 그 무성(無聲)의 지평에, 마침내 그가 도달하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예감.


에필로그 — 들리지 않는 영화를 향하여

빌뇌브는 언젠가 무성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거듭 말해왔다. 한 단어도 들어가지 않은, 그러나 관객이 영화관을 나설 때 "잠깐, 대사가 없었나?" 하고 묻게 되는 영화. 하지만 그들은 결핍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빌뇌브가 덧붙인 말이다.

그것은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이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달하지 않기에 그를 추동하는 신화일지도. 분명한 것은 그의 모든 영화가, 이미 그 무성영화를 향한 긴 산책이라는 사실이다.

극장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은 검다.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끝이 아니다. 빌뇌브의 영화에서는, 침묵이 곧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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