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개비를 물던 남자, 지금은 새벽을 달린다 — 주윤발, '따거'의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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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쫓는 게 아닙니다. 그냥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게 좋을 뿐이에요."

2026년 1월 18일, 홍콩 빅토리아 파크. 스탠다드차타드 홍콩 마라톤 10km 코스의 결승선을 일흔 살의 한 사내가 통과했다. 기록은 2시간 23초. 순위표 어디쯤인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 순간 현장 DJ가 튼 음악이 〈도신 - 정전자〉의 테마곡이었기 때문이다. 결승선의 관중들은 일제히 알아챘다. 아, 도신이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주윤발. 우리가 '따거'라고 불렀던 사람이다.

 

이미지=소후닷컴 누리집 갈무리


섬의 소년, 벨보이가 되다

1955년 홍콩 라마섬.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어촌 마을에서 한 소년이 태어난다. 아버지는 셸 정유회사의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채소를 팔았다. 소년은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를 도와 짐을 날랐다.

열일곱에 학교를 그만뒀다. 가난 때문이었다. 호텔 벨보이, 우체부, 카메라 판매원, 택시 회사 사무원. 홍콩 센트럴의 거리에서 남의 가방을 들어주던 청년은, 훗날 그 거리를 필름 카메라에 담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1973년, 신문 광고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TVB 배우 양성반 모집 공고. 그는 지원했고, 붙었다. 월급은 박했고 배역은 작았다. 하지만 무대는 열렸다.

1980년, 드라마 〈상해탄〉. 흰 목도리를 두른 갱스터 허문강 역으로 그는 아시아 전역의 얼굴이 된다. 그러나 브라운관의 성공이 스크린으로 곧장 이어지진 않았다. 영화판에서 그는 오랫동안 '흥행 독약'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TV 스타는 극장에서 안 통한다는 통념. 그 통념을 깨는 데 6년이 걸렸다.


타임라인으로 따라가는 주윤발의 얼굴들

1986 영웅본색

오우삼 감독, 그리고 마크.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위조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태우던 남자. 성냥개비를 입에 문 그 실루엣 하나로 아시아 영화의 풍경이 바뀌었다.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가 사실상 이 영화에서 태어났고, 한국의 밤거리에는 바바리코트를 입은 청년들이 쏟아져 나왔다. 흥행 독약이라 불리던 배우가, 단 한 편으로 홍콩영화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내가 잃어버린 것을 반드시 되찾겠다"던 마크의 대사는, 어쩌면 배우 자신의 선언이기도 했다.

영웅본색

 

1987 가을날의 동화

느와르의 총성 사이에서, 그는 전혀 다른 얼굴을 꺼낸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뱃사람 '선두척'.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못 하는 남자의 뒷모습으로, 그는 멜로 연기의 정점 하나를 찍었다. 총이 없어도 주윤발은 주윤발이라는 것. 이 영화가 그 증명이었다.

 

1989 첩혈쌍웅

오우삼과의 재회. 킬러와 형사, 두 남자의 우정과 파국. 성당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촛불이 흔들리는 그 총격전은 이후 홍콩을 넘어 할리우드 액션의 문법이 됐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오늘의 존 윅이 이 영화에 빚을 졌다.

 

1989 도신 - 정전자

그리고 도신. 올백 머리에 초콜릿을 먹으며 등장하는 도박의 신 '고진'. 카드 한 장을 손끝으로 튕기는 그 여유. 홍콩 도박영화의 전성기가 여기서 시작됐고, 2026년 마라톤 결승선에서 울려 퍼진 것도 이 영화의 테마였다. 37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그 멜로디만으로 한 남자를 소환한다.

 

1991-1992 종횡사해 · 첩혈속집

장국영, 종초홍과 함께한 〈종횡사해〉의 경쾌한 낭만. 그리고 양조위와 함께 병원을 불바다로 만든 〈첩혈속집〉. 홍콩 느와르의 가장 화려한 불꽃이 이 시기에 타올랐다. 그러나 불꽃은 오래가지 않았다. 홍콩 반환을 앞두고 영화계는 흔들렸고, 그는 태평양을 건넌다.

 

1998-2000 할리우드, 그리고 와호장룡

〈리플레이스먼트 킬러〉로 시작한 할리우드는 낯선 땅이었다. 영어 대사를 통째로 외우며 버텼다. 그리고 2000년,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 검객 리무바이의 절제된 눈빛으로 그는 아카데미 4관왕 작품의 중심에 섰다. 대나무 숲 위에서 검을 겨누던 그 장면. 총을 내려놓은 주윤발이 얼마나 깊은 배우인지, 서구가 뒤늦게 알아챈 순간이었다.

 

2006-2007 황후화 · 캐리비안의 해적

장예모의 〈황후화〉에서 황금 갑옷의 황제로,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에서 해적 사오펑으로. 거장들의 세계를 오가며 그는 아시아 배우의 지분을 넓혔다.

2018 무쌍

그리고 귀환. 위조지폐범 '화가' 역의 〈무쌍〉은 〈영웅본색〉의 지폐 태우던 마크에 대한 정교한 오마주이자 재해석이었다. 홍콩금상장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휩쓸었다. 60대의 주윤발은 여전히, 아니 더 서늘하게 스크린을 장악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23 별규아도신

'나를 도신이라 부르지 마라'는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도박의 신이 아니라, 도박 중독으로 무너진 채 자폐 스펙트럼의 아들과 서툴게 마주하는 아버지 역. 스스로 만든 신화를 스스로 내려놓는 연기였다. 같은 해 10월,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다. "올해로 배우 생활 딱 50년이 됐다"는 수상 소감. 벨보이 청년이 배우가 된 지, 정확히 반세기였다.

 


카메라 밖의 주윤발 — 지하철을 타는 억만장자

이미지=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그의 근황은 언제나 영화 밖에서 더 화제였다.

시가 수천억 원대의 자산가로 알려졌지만, 그는 오래된 폴더폰을 17년간 썼고,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길거리 노점에서 국수를 먹는다. 시민들이 찍자는 셀카는 거의 거절하는 법이 없어서, 홍콩에서는 '주윤발 목격담'이 하나의 장르가 됐을 정도다. 그리고 그는 오래전, 전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둔 것"이라는 말과 함께.

2023년에는 뇌졸중으로 혼수상태라는 가짜 뉴스가 홍콩 언론을 뒤덮은 일도 있었다. 코로나 확진으로 영화 프로모션을 며칠 쉰 것이 와전된 소동이었다. 그는 며칠 뒤 멀쩡한 얼굴로 무대인사에 올랐다. 소문은 요란했고, 본인은 태연했다.

달리는 사람. 10여 년 전 건강 문제를 겪은 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2023년 홍콩 마라톤 10km를 시작으로 2024년과 2025년에는 하프 마라톤까지 완주했고, 2026년에는 일흔의 나이로 다시 10km를 달렸다. 이번 완주는 76세 배우 포기정, 74세 배우 정칙사와 함께였다. "우리 나이를 합치면 몇백 년"이라며 웃던 그는, 자신의 달리기가 나이 든 사람들에게 운동할 용기를 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가. 2024년 겨울, 그는 홍콩 하버시티에서 '홍콩의 아침'이라는 사진전을 열었다. 오래된 120 필름 카메라 한 대와 렌즈 두 개로 찍은 새벽 거리 사진 30점.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센트럴의 거리를 찍는다고 했다. 배우가 되기 전 벨보이로 일했던 바로 그 거리다. 짐을 나르던 청년이, 반세기를 돌아 같은 자리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026년 3월, 홍콩 필마트에서 대형 프로젝트 하나가 공개됐다. 〈콜드 워〉 시리즈의 프리퀄 〈콜드 워 1994〉. 주윤발을 필두로 곽부성, 양가휘, 고천락 등 홍콩금상장 남우주연상 수상자 열 명이 총출동하는, 홍콩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캐스팅이다. 침체됐다는 소리를 오래 들어온 홍콩영화가, 가장 큰 카드를 다시 그의 손에 쥐여준 셈이다.

같은 시기, 바다 건너에서는 오우삼의 초기작들 — 〈영웅본색〉, 〈첩혈쌍웅〉, 〈첩혈속집〉 — 이 복원판으로 북미 극장에 다시 걸리고 있다. 바바리코트의 마크가 40년 만에 새 관객을 만나는 동안, 정작 본인은 새벽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주말이면 트레일을 달린다.

성냥개비를 물던 남자는 이제 지폐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 대신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의 아침을 찍고, 일흔의 다리로 10km를 달리고, 결승선에서 도신의 테마를 들으며 웃는다. 전설이 되는 법은 여럿이겠지만, 전설로 사는 법을 이렇게 보여주는 사람은 드물다.

당신에게 주윤발은 어떤 얼굴로 남아 있는가. 바바리코트의 마크인가, 대나무 숲의 리무바이인가. 아니면, 지하철에서 셀카를 찍어주는 그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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