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에 한발 다가선 대배우, 윤여정
- Actor
- 2021. 4. 25.
오스카에 한발 다가선 대배우, 윤여정
실로 두 해 연속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다. 작년 2020년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전대미문의 오스카 4관왕이라는 엄청난 이벤트를 우리에게 선사하더니 올해 93회 오스카에서는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예상이 조심스럽게 들려오고 있다.
아니, 이미 몇몇 매체에서는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각종 시상식 결과를 점치는 온라인 사이트인 <골드 더비, Gold Derby>의 투표 결과에 따르면 윤여정 배우는 전체 4558표를 얻어 2위인 마리아 바칼로바(588)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제쳤다. 그 외 글렌 클로즈가 415표,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188표, 그리고 올리비아 콜먼이 각각 165표를 기록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올리비아 콜먼이 5위라고? 2019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더 페이버릿>의 그녀가 이번 오스카 조연상 레이스에서는 5위라니.. 이번 <골드 더비>의 예측에서 윤여정 배우는 전문가 27명 중 24명의 선택을 받았는데 그 중 <골드 더비> 편집자 11명과 지난 2년 동안 아카데미상 예상 정확도가 높았던 “올스타 톱 24” 회원들의 몰표를 받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말이지 이번 주 월요일에 엄청난 결과가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93회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
내 개인적인 예상 역시 여러 언론 매체의 수상 예측과 더불어 윤여정 배우의 여우조연상 수상을 매우 높은 가능성을 두고 예견해 본다. 그 첫 번째 이유로는 <미나리>가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그리고 “음악상” 등 모두 중요한 경쟁 부문 후보에 오른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파더>와 <맹크> 역시 작품상 후보에 함께 오른 작품들이지만 <미나리>처럼 주요 여섯 개 부문에 고르게 오른 작품은 아니다.
영화, <미나리>
두 번째 이유로는 당연하겠지만 아카데미에서의 수상을 점치기 위해서는 이전 중요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윤여정 배우는 이미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British Academy Film Awards)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더불어 오스카 수상의 바로미터인 미국 배우 조합 (SAG) 영화 부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로는 이번 여우조연상 투표에는 작품 밖의 보이지 않는 플러스 알파 요인이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작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 당시에도 이전까지 오스카가 직면했던 아카데미의 지나친 중년-백인-남성 위주의 작품 선정 이슈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93년의 역사를 가진 아카데미의 경우 투표 인단 5,665명 가운데 50세 이상(79%), 백인(94%), 남성(77%)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평범한 영화 관객 보다는 미 공화당의 대통령 선거인단에 가까운 집단이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2011년 흑인 후보자가 없는 것에 대해) 흑인 배우 사뮤엘 잭슨은 LA 타임스에 이메일을 보내 "프롬프터를 읽을 수 있는 흑인 남자배우가 한 명도 없는 모양이라며 비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대단히 적절하게 아카데미의 방향성을 시프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올해 역시 작품 외적인 요소로는 윤여정 배우와 함께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마리아 바칼로바의 <보랏 2>가 뜨겁다. 전 뉴욕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 <보랏2> 제작진이 꾸민 가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가 현재 엄청난 망신을 당하고 있는 중이다. 영화에서 마리아 바칼로바가 줄리아니 전 시장과 인터뷰 후 (마치 사석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호텔 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때 줄리아니 전 시장이 그녀의 손을 잡고 외모를 칭찬하는 장면이 그대로 몰카에 찍혔기 때문이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개인 변호사이기도 한 줄리아니 전 시장의 이러한 구설수는 아마도 어떤 형태로든 마리아 바칼로바의 주가를 올려주는 역할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이 어느 정도 투표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작품 외 변수/(또는 프리미엄)은 사실 윤여정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미 전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시안 대상 혐오 범죄로 인해 할리우드의 많은 유명 배우들이 “Asian Lives Matter!" (아시아인들의 삶도 소중하다!) 캠페인에 속속 동참하고 있는 분위기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시작된 ”아시안 웨이브“의 연장선상에서 작년 봉준호 감독의 수상 이후, 아콰피나의 <Farewell>, 그리고 한국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기록한 <서치> 등 동양인들이 중심이 된 작품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여기에 미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아메리칸 드림“을 그리고 있는 <미나리> 속 할머니 캐릭터는 충분히 투표인단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자들을 듬뿍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워낙 현재 윤여정 배우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보니 정작 영화 <미나리> 속 그녀의 연기에 대해 제대로 얘기를 하지 못했는데 사실 오스카 수상 여부를 떠나 정이삭 감독이 그린 작품 속 순자라는 캐릭터는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 울림이 너무나 생생해 마치 나의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그리지 않았나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사실 우리에게 위대한 모든 것들은 대단히 사소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많은 것 같다. 우리들의 할머니가 그랬고 <미나리> 속 순자가 그랬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미국이라는 이역만리 타향으로 날아왔고 그 낮선 이방인의 땅에서 어떻게든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은 늘 희생하는 그런 삶을 살아왔다.
"미국으로 와서 익명의 삶을 살았으며 영어를 배우지 않았고 사망할 당시 뇌졸중으로 고통 받으셨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그런 종류의 고통을 우리 가족이 겪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포기한 분이셨습니다."
- 정이삭 감독의 인터뷰 중
일단 좋은 연기를 위해서는 좋은 캐릭터가 선행 조건인데 <미나리> 속 순자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기시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훌륭한 캐릭터를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캐릭터를 보다 더 기억에 남을만한 살아있는 인물로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배우 자신의 몫인데, 이번 작품에서 아마 윤여정 배우보다 이 역할을 더 훌륭히 수행해 낼만한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그녀의 이번 작품에서의 연기는 손자 데이빗과의 환상적인 호흡과 더불어 어찌보면 작품 전체의 주제를 매순간 순간 얼굴 표정 하나만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거기에 손자에게 화투를 가르쳐주며 슬쩍슬쩍 웃는 장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어느 영화제이건 일반적으로 여우조연상 (Supporting actors award)의 경우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베테랑 배우가 수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93회 아카데미 역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과 여배우들을 보자면 그 이름만으로도 최고의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로는 글렌 클로즈가 있다. 그녀는 국내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1987년 스릴러 드라마 <위험한 정사>의 여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부정받자 엄청난 집착과 광기를 드러내며 폭주하는 알렉스역을 신들린 연기로 표현해내 많은 영화 팬들의 사랑을 받은바 있다.
그 다음 유력한 여우조연상 후보로는 201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올리비아 콜먼이 있다. 그녀는 이번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도 오른 <더 파더>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는 큰 딸 앤 역을 맡아 대단히 섬세하면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녀의 연기력이이야 이미 <더 페이보릿>에서 보여준 연기만으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경지이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번 여우조연상 후보에서는 아마 가장 수상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영화 <더 파더>는 어디까지나 원 톱 주연의 작품이다. <더 파더>를 이야기할 때 앤소니 홉킨스의 소름 돋는 치매 환자의 연기를 떠올리지 오랜 치매 환자인 아버지 간병으로 지쳐가는 올리비아 콜먼이 떠오르진 않는다. 물론 그녀의 비범하고 섬세한 연기가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하는 장면들이 없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치매가 도저히 되돌아올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어둠 속 주방에 홀로 서있던 그녀가 컵을 떨어뜨린 후 이내 아버지의 생을 끊어보려 상상하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가히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소위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의 위치까지 묘사된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다.
이제 윤여정 배우와 경쟁하는 두 명의 여배우가 남았는데 그 중 한 명은 <맹크>에서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이다. 우리에게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매우 현명한 틴에이지 코미디 영화로 알려진 그녀는 영화 <맘마미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아버지의 존재를 찾아나선 소피 캐릭터로 잘 알려진 여배우이다. 그녀가 이번 조연상 후보에 오른 넷플릭스 영화 <맹크>는 <세븐>, <소셜 네트워크>의 데이비드 핀쳐 감독의 작품이고, 다들 아시다시피 전설적인 오손 웰즈의 데뷔작 <시민 케인>의 작가 허먼 J 맹크위츠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마리온 데이비스라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그녀의 화려한 외모만큼 출중한 연기를 선보였다.
“사람들은 잡지 표지만 보고도 날 안다고 생각하죠.”
아만다 사이프리드
위의 대사는 <맹크>의 영화 속 대사인데 사실 어찌 보면 영화 속 언론 재벌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마리온이라는 캐릭터의 대사이기도 하지만 아만다 사이프리드라는 배우를 표현하는 대사이지 않나 싶다. 어릴 적부터 십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녀는 연기력보다는 항상 그녀의 외모가 더 주목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 <맹크>에서 그녀의 연기를 떠올린다면 이제껏 우리는 그녀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아만다 사이프리드라는 배우의 보다 입체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분명 커다란 수확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앞서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과 비교해서 보다 더 주체적인 인물인 "마리온" 캐릭터를 연기하였기에 그녀는 이번 오스카에서 분명 괄목할만한 주목을 받을 것이 당연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여배우는 글렌 클로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윤여정 배우의 오스카 조연상을 위협하는 가장 막강한 여배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글렌 클로즈 역시 어린 손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 할머니 역할을 소름끼치게 소화해내 이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이 작품 역시 <맹크>와 마찬가지로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인데 감독은 배우이자 <뷰티플 마인드>의 감독인 론 하워드가 담당했다. “힐빌리”..라는 단어는 아마도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단어인데 이 보다는 (가난한 중부) 백인들을 지칭하는 “Red Neck”, 또는 “White Trash"라는 말은 조금 더 쉽게 다가올 것이다.
이 작품은 러스트 벨트 (rust belt)에서 자란 한 소년의 성장담에 가까운 작품인데 <미나리>와 마찬가지로 작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 영화 속에서 글렌 클로즈는 극 중 화자이기도 한 J. D 밴스를 가난과 폭력적인 문화 속에서도 올바르게 이끌어주는 강인한 할머니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이번이 무려 여덟 번째 노미네이트인 글렌 클로즈는 아마 윤여정 배우가 수상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이번 오스카는 그녀의 것이 아닐까 싶다. 올해 73세인 그녀는 역대 오스카 비수상자 중에서 가장 많은 노미네이트 후보에 오른 배우이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서 글렌 클로즈는 작품의 모델이 된 작가의 할머니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실제 사진도 참고하고 영상도 참고하며 그녀가 가족들과 어떻게 행동했고 실제 몸을 어떻게 썼는지까지 세심한 부분들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름과 경력만 들어도 대단한 여배우들과 이번 오스카를 겨룬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헌데 윤여정 배우 역시 사실 위에 언급한 대배우들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실로 너무나 많은 작품에서 위대한 연기를 보여준 그녀이기에 일일이 그녀가 출연한 명장면을 다 열거하긴 힘들지만 단 한 작품만 떠올려보자면 임상수 감독에서 그녀가 연기한 늙은 집사 캐릭터가 당장 떠오른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부자들의 눈치를 보며 때로는 비굴할 정도로 몸을 낮추지만 그들이 외출하자 “해방이다!”를 외치는 장면은 그저 단순한 하나의 캐릭터, 인상적인 하나의 장면을 떠나 그 이상의 어떤 삶의 충만한 에너지를 스크린 밖으로 선사한다.
일찍이 김기영 감독의 1971년 전설적인 작품 <화녀>로 데뷔한 윤여정 배우, 그녀는 어찌된 운명인지 첫 영화를 괴팍하고 엉뚱하기까지 한 천재 김기영 감독과 작업했다. 그 영화가 너무나 힘들었던지 <화녀> 이후 다시는 연기 생활을 안 하기로 결심한 적도 있다고 회고하는 그녀다.
"첫 영화를 김기영 감독님과 했으니 다른 감독들도 그런 줄 알았어요.너무 힘들어서 평생 영화를 다시는 안 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죠.그 땐 김기영의'기역(ㄱ)'도 보기 싫었어요."
이제 불과 며칠 후면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고 가슴 떨리는 드럼 소리와 함께 다섯 명의 여배우가 차례로 브라운관에서 호명될 것이다. 과연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다가올까? 사실 개인적으로야 당연히 윤여정 배우의 수상을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다만 위에 언급된 네 명의 여배우 그 누가 수상한다 하더라도 그 무게는 윤여정 배우의 수상과 비교해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p.s. 이 칼럼을 쓰는 동안 새로운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윤여정 배우가 지난 22일 미 독립영화상 '스피릿 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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