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토리텔러, 죤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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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여름철 바닷가에 가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아마 모처럼만에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왔다면 지금쯤 우리 아이들이 어디에서 놀고 있나 아이들의 튜브를 찾아보실 것이며,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온 것이라면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바다 저 끝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뛰어넘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계시지 않을까요? 헌데 제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바닷가에 가서 처음 물에 발을 담그는 그 순간 상어를 떠올립니다. 상어. 더 정확히 말하면 “죠스”가 떠오릅니다. 우습죠?

 

 

저에게 바다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상어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나를 노출시킨다는 생각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영화 <죠스> 때문입니다. 그리고 <죠스>하면 떠오르는 건 누구나 예외 없이 아마도 죤 윌리엄스의 음악 아닐까요? 그 낮은 첼로의 저음으로 시작되는 “빠밤, 빠밤, 빠밤빠밤~ 빠빤빠반 사운드”.

 

일반적으로 우리가 블록버스터라고 부르는 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폭격한 4.5톤짜리 거대한 폭탄에서 유래된 용어인데 영화 <죠스>는 소위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기록됩니다. 1975년 개봉 당시 1억불 (1,100억원)이 넘는 흥행을 기록했으며 인플레이션까지 감안하면 대략 4억 7천만불(5,000억)에 달하는 지금 기준으로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 이후 여름 방학 시즌 블록버스터 액션 대작의 개봉은 이제 하나의 마케팅 공식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죠스>, 1975


다시 죤 윌리엄스로 돌아가자면, 처음 스필버그는 <죠스>의 음악을 죤 윌리엄스에게 맡긴 후 상어가 바다 밑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장면을 당연히 대규모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표현할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죤 윌리엄스는 스필버그의 예상을 깨고 최대한 미니멀한 악기만으로 바다 속 미지의 물체가 엄습하는 공포를 표현했습니다. <죠스>에서 죤 윌리엄스가 사용한 악기는 여섯 대의 콘트라베이스, 여덟 대의 첼로, 네 대의 트럼본과 튜바만을 사용해 그 무시무시하게 소름 돋는 사운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사실 영화 <죠스>에는 너무나 많은 영화와 관련된 얘기들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훌륭한 시나리오 작법의 예시로 삼는 영화의 도입부가 있습니다. 

<스필버그 & 죤 윌리엄스> 1977



<죠스>의 도입부는 미국 롱아일랜드의 작은 해안 피서지 에미티라는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로 비유하자면 강릉이나 양양정도의 작은 해안가 마을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 마을의 일년 수입은 여름 한철 피서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것이 이 마을 수입의 전부인 그런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젊은이 하나가 상어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마을 경찰서장 입장에서는 여간 껄끄러운 상황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제 갓 부임한 마을의 시장인 래리 보갠의 입장은 조금 다릅니다. 그는 시의회 의원들을 이끌고 와서 브로디 서장을 한쪽 코너에 몰아붙인 채 말합니다. 

                          “관광객들이 여기서 수영을 못하면 휴가를 다른 곳을 갈 겁니다..”

<죠스>, 1975


이때 브로디 서장이 만약 단호하게 시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해변을 폐쇄했다면 아마 더 이상의 사고는 막을수도 있었겠지만 브로디는 우물쭈물하다 시장의 말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서장의 입장에서도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해변을 모두 봉쇄한다는 건 무척 부담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브로디 서장, <죠스>, 1975

 

그리고 이후 당연히 해변에서는 상어에 의해 아이가 공격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너무나 유명한 줌인 트랙아웃 쇼트로 이 상황에 기겁하는 브로디 서장의 모습이 보여집니다.

<죠스>, 1975


영화 <죠스>는 지금 다시 보면 매우 아담한 사이즈의 영화이고 플롯적으로 봤을 때도 소박하기까지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소위 나이를 천천히 먹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45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봐도 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순수한 공포는 여전히 유효한 듯 보입니다. 물론 당시 약관의 이십 대 후반 천부적인 연출 솜씨를 발휘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연출이 없었다면 <죠스>의 흥행은 불가능했을 것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역시 죤 윌리엄스입니다.

<스필버그 & 죤 윌리엄스>


죤 윌리엄스를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은 단연코 <인디아나 죤스>의 OST일 것입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지금도 <Raider's March>라고 부르며 인디아나 죤스 시리즈의 1탄인 <레이더스>에서 사용된 그 팡파레를 높이 평가합니다.

 

<레이더스>, 1981

 

누구라도 한번 이상은 들어봤던 음악일 테고, 언제라도 들으면 왠지 나도 모르게 어딘가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음악이죠. 아마 그때 당시를 떠올리는 영화 팬이라면 뽀송뽀송했던 시절의 해리슨 포드가 처음 사원에서 굴러오는 거대한 돌덩이를 아슬아슬 피하는 장면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레이더스>, 1981


많은 감독들이 자신만의 음악 감독과 평생 파트너쉽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요 앞서 이 블로그에서 다뤘던 히치콕과 버나드 허먼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스필버그-죤 윌리엄스 콤비는 정말이지 수많은 작품을 “끝까지” 함께한 연출-음악 감독으로 손꼽힐 것입니다. 대략 스필버그가 직접 감독하고 죤 윌리엄스가 작곡한 작품들만 세어보더라도.. 사실 쉽지 않은 분량을 함께 작업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4년 《슈가랜드 특급》
1975년 《죠스》 - 골든 글로브상,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
1977년 《미지와의 조우》 -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1981년 《인디아나 존스와 레이더스》 - 그래미상,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1982년 《E.T.》 - 골든 글로브상,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
1984년 《인디아나 존스와 죽음의 사원》 -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1989년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1991년 《후크》
1993년 《쥬라기 공원》
1993년 《쉰들러 리스트》 - 그래미상,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
1997년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 - 골든 글로브상, 그래미상,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2001년 《A.I.》 그래미상,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2001년 《쥬라기 공원 3》
2002년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년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2002년 《캐치 미 이프 유 캔》
2004년 《터미널》
2005년 《우주 전쟁》 - 그래미상 후보
2005년 《게이샤의 추억》 - 골든 글로브상,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2005년 《뭔헨》 - 미국 아카데미상 후보
2008년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2011년 《틴틴의 모험》

<쉰들러 리스트>, 1994


이처럼 죤 윌리엄스는 주로 스필버그가 감독한 대부분의 작품들을 함께 했지만 그의 필모를 자세히 보면 스필버그 외에도 <타워링>의 죤 길러먼, <슈퍼맨>의 리차드 도너, <나홀로 집에>의 크리스 콜럼버스, <JFK>의 올리버 스톤 그리고 <해리 포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같이 당대 최고의 감독들의 작품에 음악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니 전 세계 지구인들에게 죤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누가 뭐라해도 <스타워즈, 에피소드 IV, 새로운 희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타워즈 IV>의 OST는 모두 16개의 작품(piece)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메인 타이틀곡은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 중 하나라 해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타워즈 IV>, 1977


죠지 루카스 감독의 1977년 할리우드 전설의 시작 <스타워즈 IV>는 그 유명한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로 시작하는 자막과 함께 죤 윌리엄스의 메인타이틀 곡이 흐르면서 향후 오십년간 지속될 엄청난 역사를 시작합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정통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고 영화계에 입문한 경력으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오케스트레이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들이 많습니다. 특히 차이코프스키, 리하르트 바그너와 같은 후기 낭만파 작품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 그의 색채는 주로 웅장한 액션 영화나 판타지 영화들에서 더욱더 진가를 발휘합니다. 앞서 설명한 <인디아나 죤스 1탄>에서 사용된 “레이더스 행진”(Marching)곡이나, <스타워즈 IV ; 새로운 희망>의 타이틀곡처럼 보다 장엄하고 영웅전인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팡파레나 금관 악기들의 사용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많은 영화 팬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 후배 영화음악 감독 한스 짐머의 스타일과도 약간 비슷한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죤 윌리엄스의 필모를 보면 무려 42년간 이어져온 <스타워즈> 시리즈를 당연히 먼저 언급해야겠죠. 

<스타워즈 IV ; 새로운 희망>, 1977
<스타워즈 V ; 제국의 역습>, 1980
<스타워즈 VI ; 제다이의 귀환>, 1983
<스타워즈 I ; 보이지 않는 위험>< 1999
<타워즈 II : 클론의 습격>, 2002
<스타워즈 에피소드 III : 시스의 복수>, 2005
<스타워즈 에피소드 VII : 깨어난 포스>, 2015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 2015

 

이 외에도 죤 윌리엄스는 특유의 팡파레와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을 편성을 사용해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소년의 우정을 다룬 <E. T.>, 우리에겐 <구니스>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리차드 도너의 <슈퍼맨>의 OST,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를 파헤친 작품 <JFK>와 같은 작품에서 특유의 낭만적이면서도 신나는 영화음악을 지난 반세기 동안 만들어 왔습니다.

 

 

  “죤 윌리엄스는 영화를 이전보다 더 신나고 흥분되는 매체로 만들었다!!”
    - 스티븐 스필버그 

 

이번 죤 윌리엄스에 대한 글을 준비하면서 그의 음악들을 들어보고 여러 블로거들이 쓴 글들을 보면서 그가 지난 50년간 얼마나 위대한 음악을 만들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의 영화 음악은 영화라는 시각적인 장르에서 음악이라는 매체로 표현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두 가지를 너무나 훌륭히 충족시켜주고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바로 스토리와 재미입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 우리 인간사가 계속되는 이상 우리들과 영원히 함께할 그 유명한 임페리얼 마치, <제국의 행진 ; (Darth Vader's Theme)>

 

<제국의 행진>, 죤 윌리엄스 & 비엔나 필하모닉


죤 윌리엄스라는 음악감독을 설명하는 많은 방식이 있겠지만 이번 칼럼을 마치며 이 모든 전설의 시작이었던 1977년 <스타워즈 VI ; 새로운 희망> OST의 네 번째 트랙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음악을 들어보면 저 광활할 우주 어딘가 모래 바다가 펼쳐진 곳을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오고 있는 R2D2와 C-3PO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죤 윌리엄스 영화 음악들의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화 음악을 통해 시나리오와 미장센으로 표현된 그 이상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죤 윌리엄스에 대한 가장 큰 찬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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