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마이어스, <카바티나>

반응형
250x250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은 영화 음악은 스탠리 마이어스의 <카바티나>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카바티나>는 호주 출신의 기타리스트 죤 윌리엄스의 연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곡이기도 하죠, (참고로, 할리우드 영화음악 감독 죤 윌리엄스 (John Towner Williams)와는 다른 분이십니다).

 

 

아마도 <카바티나>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신 작품일 테고, 무엇보다 영화 팬들에게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1978년 작품인 <디어 헌터>의 영화 음악으로 잘 알려진 곡입니다. 원래 "카바티나" 18,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볼 수 있는 심플한 형태의 독창곡을 뜻하는 용어인데요, 일반적으로 2, 또는 곡의 반복이 없는 단순한 성격의 서정적인 짧은 노래를 카바티나라고 합니다.

 

 

사실 영화 음악과 관련해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생각나는 음악 감독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죤 윌리엄스도 후보 중 한 분이었고, 버나드 허먼, 또는 한스 짐머로 이 칼럼을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음악과 관련한 첫 번째 포스팅을 스탠리 마이어스의 <카바티나>로 시작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 곡이 예전 이문세씨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3부 시그널 음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깊은 밤 삼성 마이마이 카세트 라디오에서 이 음악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면 그날 하루 있었던 모든 힘든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고, 달콤하고 환상적인 영화 음악의 세계로 무한한 여행을 떠나곤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모든 아름다운 음악이 그러하겠지만 사실 <카바티나>는 이 음악만의 특별한 마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더라도 이 음악을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라도 된다면 가슴 한편 저 깊은 곳에 쌓아두었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털어버리게 하는, 그런 마법과도 같은 힘이 있는 음악이 바로 <카바티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죤 윌리엄스

 

헌데 아이러니한 것이 이처럼 감미로운 선율의 음악이 정작 영화 속 스크린에서 흐르는 순간은 너무나 애통하고 참담하고 비참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는 펜실바니아의 작은 도시 클레어톤 제철소에서 일하는 마이클, , 스티븐, 그리고 닉의 연인 린다, 이렇게 네 명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 (크리스토퍼 워컨), 스티븐(죤 새비지)은 전형적인 미국 소도시의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은 주중에는 철강 공장에서 거칠고 힘든 일을 하지만 주말이면 친구들끼리 한데 모여 당구도 치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즐깁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있어 사슴 사냥은 (deer hunting)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친구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중요한 레저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초-중반까지 마이클과 닉, 스티븐, 여기에 더해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닉의 연인 린다까지, 이렇게 네 친구의 일상을 여과 없이 평온하게 따라갑니다. (물론 중간에 무려 25분이 넘는 러시아 정교회 스타일의 결혼식 피로연 시퀀스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디어 헌터>, 1978

그리고 본격적인 스토리는 이들 중 마이클과 닉, 스티븐, 이렇게 세 친구가 당시 미 전역을 휩쓸던 전쟁의 광풍에 휩쓸려 베트남으로 떠나며 급작스럽게 속도를 냅니다. 베트남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친구들끼리 바(Bar)에 모여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피아노를 치며 불안한 마음을 서로 위로하는 장면에서.. 컷이 바뀌면 (너무나 갑작스러울 정도로..) 절단된 동료의 살점이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가 떨어지는 베트남 전장의 한가운데로 관객을 내동댕이칩니다.

 

이후 마이클과 닉은 설명하기조차 힘든 참혹한 전쟁의 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고 그러던 중 밀림에서 적의 포로가 되어 온갖 고문과 학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폭력적인 그 유명한 러시안 룰렛 장면이 등장합니다.

 

<디허 헌터>, 1978

 

러시안 룰렛이란 리볼버 권총의 여러 개의 약실 중 하나에만 총알을 넣고 총알의 위치를 모른 채 한 사람이 먼저 총알로 머리를 관통당할 때까지 방아쇠를 당기는 죽음의 게임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베트남 병사들이 뒤에서 총을 겨눈 채 닉은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고, 친구 마이클은 이를 두 눈을 감지 못한 채 그저 지켜봐야하는 게임을 강요받습니다.

 

<디어 헌터>, 1978

이후 가까스로 베트남을 탈출한 마이클은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전쟁에서 반신불수가 된 스티븐과 홀로 남은 닉의 연인 린다(메릴 스트립) 뿐입니다.

 

메릴 스트립, <디어 헌터>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는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와 할 애쉬비의 <귀향>과 같이 참전 용사들의 고향으로의 복귀와 그들의 트라우마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이 영화 이후 미국은 본격적으로 일련의 반전 영화들을 생산해 냅니다.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이 아마 그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일 테고 그와 더불어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 죤 어반의 <햄버거 힐>, 역시 올리버 스톤의 <7 4일생>과 같은 작품들이 뒤를 이어 나옵니다.

 

<플래툰>, 1986

 

<디어 헌터>가 그리는 당시 미국의 현실은 어둡고 우울하며, 참담하고 패배주의적 기운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또한 영화의 원안을 담당했던 마이클 치미노는 지금도 일부 미국인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위대한 미국의 초라한 몰락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마이클은 사슴 사냥을 나가지만 더 이상은 예전처럼 사슴을 쏠 수 없게 되고,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트라우마에 갇혀 살아갈 수밖에 없을 듯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극도로 우울하고 참담한 분위기가 유지된 채 영화는 닉의 장례식에 모인 친구들의 얼굴을 차례로 보여주며 무심하게 끝이 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장면에서 한때 그들이 행복했을 때의 모습을 스틸 프레임으로 한 사람씩 보여주는데 이때 흐르는 음악은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들려지는 <카바티나>입니다. 그리고 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 영화의 엔딩 장면과 함께 흐르던 영화 음악의 선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스탠리 마이어스

<디어 헌터>의 음악감독 스탠리 마이어스는 1960년대부터 무려 60여 편이 넘는 영화 음악의 작곡을 맡은 베테랑 작곡가입니다. 그는 1980년대 혈기왕성했던 이십대 중반의 한스 짐머가 처음 영화 음악계로 들어설 때 선뜻 자신이 진행하던 영화 음악의 작업을 맡긴 한스 짐머의 영원한 멘토이기도 하십니다...

 

- 에필로그

 

그리고 사실 이번 스탠리 마이어스 <카바티나> 칼럼을 준비하며 문득문득 떠올랐던 인물은 고 정은임 아나운서였습니다. 저의 이십대를 떠올릴 때 가끔 연관 검색어로 그녀가 떠오릅니다. 늦은 밤 이런 저런 고민들로 잠 못 이룰 때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로 영화를 소개받고 이어 흘러나오던 음악 한편을 베개 삼아 스르르 잠들던 그때가 무척 그립습니다.

 

정은임 아나운서, <FM 영화 음악>

앞서 영화 음악 <카바티나>에게는 마법과도 같은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면 모든 영화 음악 안에는 그런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아이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마당을 나온 암탉> 바람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알을 깨고 저 푸른 하늘 위로 비상하는 초록이의 모습이 떠오르고 또 라이 쿠더의 기타 선율이라도 들릴 때면 텍사스 사막 저 어딘가를 헤매고 다니는 트래비스의 메마른 얼굴이 손에 잡힐 듯 떠오릅니다.

 

영화 음악이란 정말이지 많은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힘은 우리를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그 영화를" 보던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마법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런 생각에 오늘도 다시 한번 죤 윌리엄스의 기타 연주로 <카바티나>를 들어보려 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