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 벨제붑의 노래〉 — 같은 이름, 다른 운명. 20년 시리즈의 마지막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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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
한 사람은 운을 타고났고,
한 사람은 평생 그 운을 옆에서 지켜봤다.

 

추석 전날 극장은 붐볐다.
20년 전 이맘때, 누군가는 이 자리에서 고니를 만났을 것이다.
2014년엔 대길을, 2019년엔 일출을.
그리고 2026년 가을, 마지막 패가 펼쳐진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
시리즈의 마침표라는 무게를 짊어진 영화.
그런데 막상 스크린 앞에 앉아 보니, 이 영화는 마침표보다 새 문장에 가까웠다.

 

 

작품 정보

 

제목: 타짜: 벨제붑의 노래 (Tazza: The Song of Beelzebub)
개봉: 2026년 9월 23일
러닝타임: 129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범죄, 드라마
감독: 최국희
각본: 최국희, 김현
원작: 허영만·김세영 만화 「타짜」 4부 '벨제붑의 노래'
출연: 변요한(장태영), 노재원(박태영), 미요시 아야카(가네코), 조우진(곽동욱, 특별출연), 윤경호(조중환), 임세미(장태희), 스윙스(아브라함)
음악: 황상준
제작: 싸이더스
배급: CJ ENM

 

1. 1편을 몰라도 된다 — 이건 외전이다

 

먼저 말해두고 싶다.
고니도, 아귀도, 평경장도 몰라도 괜찮다.

 

앞선 세 편은 가느다란 끈으로나마 이어져 있었다.
2편의 대길은 고니의 조카였고, 3편의 일출은 짝귀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4편은 다르다.
원작 만화에서부터 앞선 인물들과 연결점이 없는, 사실상 독립된 이야기였다.

 

최국희 감독도 이 영화를 외전격 작품이라고 불렀다.
타짜라는 이름과 도박이라는 소재만 공유할 뿐,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친구의 것이다.

 

그러니 타짜 시리즈를 한 편도 보지 않은 관객이라도 편하게 들어가면 된다.
오히려 이 영화로 입문한 사람이 1편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감독이 바란 선순환도 그런 것이었다.

 

 

2. 스페이드 A와 스페이드 2 — 벨제붑과 루시퍼 이야기

 

영화는 오래된 전설 하나로 문을 연다.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은 카드를 악마의 도구라 여겼다.
죽음을 뜻하는 스페이드 13장에는 모두 악마의 이름이 붙었다.
스페이드 A는 루시퍼.
스페이드 2는 벨제붑.

 

루시퍼는 본래 천사였다.
이름의 뜻부터가 '빛을 가져오는 자'.
하지만 더 높은 자리를 탐하다 하늘에서 떨어졌다.
추락의 이유는 교만이었고, 그 밑바닥에는 시기가 있었다.

 

벨제붑은 원래 지옥을 다스리던 자다.
'파리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원작은 이 두 악마를 두 태영에게 겹쳐 놓았다.
장태영이 벨제붑, 박태영이 루시퍼.

 

이 설정을 알고 나면 영화의 첫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장태영은 자신이 똥파리로 변하는 악몽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꿈속에서, 박태영은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다.

 

파리의 왕으로 추락하는 남자.
그 추락을 내려다보는, 빛이 되고 싶었던 남자.

 

포커에서 A는 2보다 높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제목은 루시퍼가 아니라 벨제붑의 노래다.
그 역전에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로 부제 '벨제붑의 노래'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왔다.
그 노래 속에 벨제붑의 이름이 등장한다.

 

 

3. 원작은 열 권, 영화는 129분 — 무엇을 덜어냈나

 

원작 4부는 열 권 분량이다.
허영만 화백이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로 꼽았고,
1편의 최동훈 감독조차 왜 4편을 먼저 만들지 않았냐는 말이 나올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했던 작품이다.

 

영화는 과감하게 줄였다.
편집 초안만 4시간 반.
그걸 2시간 남짓으로 압축했다.

 

원작과 달라진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다.

 

두 태영의 사업: 원작의 사업이 영화에서는 온라인 카지노로 바뀌었다.
스승의 은거지: 원작의 말레이시아가 베트남으로 옮겨졌다.
스승의 이름: 원작의 장동욱이 영화에서는 곽동욱이 되었다.
친구의 이름: 원작의 너구리가 하마로 등장한다.
로비스트: 원작의 린다 정과 영화의 린다 박이 같은 인물인지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서사의 초점: 방대한 원작 대신 장태와 박태 사이의 질투, 시기, 배신, 복수에 집중했다.

 

덜어낸 자리에서 가장 크게 잃은 것은 박태영의 전사다.
노재원은 원래 대본에 박태영이 장태영의 당구 큐대 잡는 법까지 따라 하는 장면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 장면들이 빠지면서 박태영은 스크린 위에서 조금 더 자극적인 악인으로 남았다.

 

원작 팬이라면 아쉬울 지점이다.
반대로 원작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군더더기 없는 복수극으로 읽힌다.
같은 영화가 누구에게는 압축이고, 누구에게는 속도다.

 

 

4. 변요한 — 한 영화 안의 여덟 얼굴

 

변요한은 이 영화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한다.

 

교복을 입은 학창 시절의 장태.
끗발 하나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젊은 사업가.
친구의 배신으로 베트남 어딘가에서 목숨을 저울질당하는 남자.
전설의 타짜 곽동욱 앞에 무릎 꿇은 제자.
가네코와 한 편이 되기 위해 몸까지 내어주는 승부사.
그리고 똥파리로 변하는 악몽 속의 벨제붑.

 

그 악몽 장면은 100% CG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수많은 카메라에 둘러싸여 혼자 연기하는데, 앞에서 노재원이 웃고 있었단다.
배우 본인은 민망했다고 털어놨지만, 영화 전체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이 참고한 레퍼런스는 다름 아닌 베놈이었다.

 

미생의 한석율, 자산어보의 창대, 한산의 와키자카.
변요한은 늘 한 작품 안에서 한 사람을 정확하게 새겨온 배우였다.
이번엔 한 사람 안에 여러 사람을 새겼다.

 

그는 이 역할을 두고 잘하면 본전, 못하면 평생 놀림거리라고 했다.
피하면 비겁한 배우가 될 것 같아 들어갔다고.
조승우에게는 시리즈 마지막 작품을 하는 사람으로서 따로 연락도 드렸다고 한다.

 

 

5. 노재원 — 찌질함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용기

 

이 영화의 진짜 발견은 박태영이다.

 

박태영은 멋있는 악당이 아니다.
그래서 무섭다.

 

회사를 함께 세웠는데 사람들은 장태영만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노력은 박태영이 했는데 박수는 장태영이 받는다.
그 작은 결핍이 쌓이고 쌓여, 결국 친구를 나락으로 밀어버린다.

 

질투는 가장 흔한 감정이다.
그래서 가장 연기하기 어렵다.
관객이 제 안의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노재원은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았다.
촬영 기간 내내 변요한이 입는 옷 브랜드를 따라 사 입고, 먹는 것을 따라 먹고, 감독과 나누는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고 한다.
그 모든 행동이 자격지심과 시기로 이어지더라고.

 

오징어 게임의 남규, 살인자ㅇ난감, D.P. 2.
짧은 등장으로도 잊히지 않던 얼굴이 첫 상업영화 주연에서 드디어 한 사람의 전체를 보여줬다.
본인은 그렇게까지 못되게 보일 줄 몰랐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이 연기에 대한 가장 정확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6. 미요시 아야카 — 웃음을 지운 얼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미 아야카의 팬이었다.

 

미친맛집에서 보던 그녀는 발랄하고 상쾌했다.
털털하게 먹고, 유쾌하게 웃고, 꾸밈없이 말하던 사람.
화면 너머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타짜의 가네코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야쿠자를 등에 업은 사사키 그룹의 본부장.
판을 짜고, 사람을 재고, 좀처럼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웃음기 하나 없는 차가움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낯섦이, 또 다른 매력이었다.

 

알던 사람의 모르던 얼굴을 보는 일.
배우를 좋아하는 즐거움은 결국 그런 데 있는 것 같다.

 

 

7. 최국희 — 연락처도 없는 후배가 바친 오마주

 

최국희 감독은 스플릿(2016)으로 데뷔해 국가부도의 날(2018)로 이름을 알렸다.
볼링판과 외환위기.
판 위에 선 사람들의 욕망을 그려온 감독이 결국 타짜에 닿은 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는 원작 만화의 오랜 팬이었고, 무엇보다 1편의 팬이었다.
그래서 영화 곳곳에 1편을 향한 오마주를 숨겨 두었다.
정마담의 등을 보여주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베드신, OST, 명대사의 재연.
감독은 다 찾아내는 관객이 있을까 싶다고 했다.

 

재미있는 건 앞선 감독들과의 관계다.
최국희 감독은 스스로를 내향인이라 부르며, 최동훈 감독의 연락처조차 없다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최동훈, 강형철, 권오광.
세 감독 모두 축전 영상에 얼굴을 비추며 마지막 편을 응원했다.

 

감독은 1편과의 비교를 시리즈의 숙명이라고 했다.
2편과 3편의 감독들도 그 비교 속에서 마음고생을 했을 거라고.
같은 무게를 먼저 짊어져 본 사람들만 건넬 수 있는 응원이었을 것이다.

 

이 시리즈의 20년은 제작사 싸이더스의 20년이기도 하다.
그리고 1편을 배급했던 CJ ENM이 20년 만에 다시 마지막 편의 배급을 맡았다.
처음과 끝이 같은 손에서 만난 셈이다.

 

 

8. 나의 감상 — 숙명을 알고 앉은 자리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사람이 떠올랐다.
타짜: 원 아이드 잭의 권오광 감독. 고등학교 후배인 그는 매우 좋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그에게서, 타짜를 만들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의 말에 묻어나던 긴장감과 부담감을 아직 기억한다.

 

허영만이라는 원작의 무게.
그리고 최동훈이라는 1편의 무게.
어느 쪽 하나만으로도 버거운데, 타짜의 감독은 그 둘을 한꺼번에 짊어져야 한다.
잘 만들어도 1편과 비교되고, 조금만 흔들려도 원작 팬들의 질타를 받는다.
그것이 이 시리즈를 맡은 감독의 숙명이다.

 

최국희 감독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더 눈여겨보며 앉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듦새는 꽤 좋았다.
두 친구의 감정선은 촘촘했고, 배우들은 제 몫 이상을 해냈다.
열 권의 원작을 두 시간으로 줄이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을 놓치지 않았다.

 

다만 아쉬움도 있다.
종반으로 갈수록 전개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론 원작이 있는 이야기이니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래도 중반까지 팽팽하던 긴장이 마지막 판에 이르러 조금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타짜를 타짜답게 만들던 현란한 손기술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작은 허전함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마지막 편이라는 무게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낸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남긴 질문은 선명하다.
운은 정말 타고나는 것인가.
그리고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의 노력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타짜 시리즈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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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장태영인가? 박태영인가?
운을 타고난 사람을 옆에서 바라본 적이 있다면,
그때 마음속에 스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극장을 나서며 조금 오래 박태영을 생각했다.
그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다만, 완전히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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