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로 산다는 것

아무도 당신을 모른다면, 당신이 한 일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8월의 극장은 늘 서늘하다. 바깥은 아스팔트가 녹을 것 같은데, 상영관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공기가 한 겹 내려앉는다. 그 낙차가 좋아서 여름마다 극장에 간다. 이번에도 그랬다.

객석은 가족 단위가 많았다. 어린아이가 스파이디 마스크를 쓰고 앞줄에 앉아 있었다. 불이 꺼지고 1인칭 웹 스윙으로 오프닝이 시작되자 그 아이가 몸을 뒤로 젖혔다. 나도 조금 젖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의 몸을 건드리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영화 정보

제목: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Spider-Man: Brand New Day)
감독: 데스틴 대니얼 크레턴
각본: 크리스 맥케나, 에릭 소머즈
출연: 톰 홀랜드, 젠데이아, 세이디 싱크, 제이콥 배덜런, 존 번탈, 마크 러팔로, 플로렌스 퓨, 마리사 토메이
촬영: 브렛 폴랙
음악: 마이클 지아키노
미술: 찰스 우드
제작비: 2억 2,500만 달러
상영 시간: 145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국내 개봉: 2026년 7월 29일 (북미보다 이틀 빠른 개봉)
배급: 소니 픽처스


이하 내용에는 설정과 전개에 대한 언급이 포함된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여기서 창을 닫아도 좋다.

 

잊힌 자의 4년 — 이 영화가 시작하는 자리

전편의 마법은 세상 모두에게서 피터 파커를 지웠다. 이 영화는 그 이후 4년을 건너뛴 자리에서 문을 연다. 스파이더맨은 여전히 뉴욕에 있다. 유명하다. 도시는 그를 안다. 다만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흥미로운 건 이 설정이 만드는 고독의 질감이다. 외로움이 아니라 무명(無名)의 외로움. 사랑받는데 알려지지 않는 상태. 영화는 이 감각을 초반 몽타주에 압축해 넣는다. 스콜피온, 툼스톤, 부메랑, 타란툴라. 원작 코믹스의 유명한 장면들을 흩뿌리며 4년을 훑고 지나간다. 화려한데 어딘가 쓸쓸하다. 승리의 기록이 곧 고립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DNA 변이가 온다. 통제되지 않는 힘. 그의 정체를 아는 적. 이야기는 거기서 굴러가기 시작한다.

 

능력론 - 〈스파이더맨 2〉의 거울상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오른 건 2004년의 〈스파이더맨 2〉였다. 그런데 정확히 뒤집힌 형태로 떠올랐다.

샘 레이미의 피터는 힘이 빠져서 흔들렸다. 거미줄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슈트를 벗고 피터 파커로 살아보려 했다. 이번 피터는 반대다. 힘이 너무 세져서 흔들린다. 그리고 피터 파커의 삶을 방치한 채 스파이더맨 쪽으로 도망친다.

같은 질문의 앞뒷면이다. 나는 무엇으로 나인가. 한쪽은 능력을 잃으며 묻고, 다른 한쪽은 능력에 삼켜지며 묻는다. 두 영화 모두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기 안의 다른 힘을 외부의 장치 없이 스스로 제어하며 끝난다는 점도 같다. 20년을 사이에 두고 시리즈가 자기 자신에게 답장을 보낸 셈이다.

 

톰 홀랜드 - 소년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홈커밍의 홀랜드는 어렸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몸이 가벼웠다. 이번엔 다르다. 얼굴에 그늘이 생겼고, 농담을 던질 때조차 눈이 웃지 않는다.

가장 오래 남는 건 큰 액션이 아니라 메이 파커의 묘지 장면이다. 그 장면의 대사는 홀랜드의 애드리브였다고 한다. 크레턴 감독이 첫날 촬영을 마치며 영화의 마지막에 쓸 장면을 하나 더 찍자고 제안했고, 홀랜드가 대사를 붙여보겠다고 하면서 성사된 것이다. 감독은 이후 인터뷰에서 그 애드리브에서 이번 작품의 방향성을 찾았다고 밝혔다.

배우가 캐릭터를 10년 가까이 데리고 살면 이런 일이 생긴다. 감독보다 배우가 먼저 그 인물의 목소리를 아는 순간.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은 각본이 아니라 그 즉흥에서 나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 그레이라는 문 - 다음 시대가 여기서 열린다

세이디 싱크는 개봉 전까지 1년 동안 자신의 배역을 숨겼다. 뚜껑을 열어보니 진 그레이였다.

원작에서 스파이더맨과 진 그레이는 접점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진 그레이는 밸런스가 무너질 만큼 강한 캐릭터다. 그 둘을 한 영화 안에서 감정적으로 묶어내는 건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고, 영화는 그것을 꽤 성실하게 해냈다. 다음 페이즈의 뮤턴트 서사를 향한 첫 걸음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각도다.

다만 캐릭터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다. 힘이 너무 크면 극이 그 힘을 감당하느라 다른 걸 놓친다. 이 지적은 타당하다고 본다.

 

빌런은 어디에? - 악당이 없는 자리에서 무엇이 싸우는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논쟁점은 여기다. 확실한 메인 빌런이 없다.

타인의 의식을 조종하는 존재, 핸드, 헐크, 퍼니셔. 위협은 계속 등장하는데 하나의 얼굴로 수렴하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의 해결 방식도 다소 편의적으로 느껴진다. 평론가 점수가 시리즈 중 가장 낮게 나온 이유의 상당 부분이 여기 있다고 본다. 메타크리틱 66점은 MCU 스파이더맨 네 편 중 최하위다.

그런데 관객 점수는 정반대다. 로튼 토마토 관객 지수 98퍼센트. 시리즈 최고이자 MCU 전체 최고 수준이다. 비평가 지수는 89퍼센트, IMDb는 8.2점.

이 간극이 흥미롭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이 영화의 진짜 적은 외부에 없다. 통제되지 않는 자기 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기 이름. 적이 내부에 있는 영화에서 빌런의 부재는 결함이면서 동시에 설계다. 평론은 구조를 보고 감점했고, 관객은 정서를 보고 가점했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촬영론 — 스크린이 먼저 설계된 영화

이 작품은 SCREENX 기술이 기획 단계부터 적용된 최초의 영화다. 기존 작품들이 후반 작업에서 변환했다면, 이번엔 촬영 현장에 전담 팀이 들어가 파노라마 촬영을 따로 진행했다. 4면 SCREENX가 적용된 최초의 해외 상업영화이기도 하다.

기술 자랑으로 들릴 수 있는데,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에는 이 선택이 의미가 있다. 이 히어로의 액션은 좌우로 흐른다. 빌딩과 빌딩 사이, 시야 바깥에서 갑자기 들어오는 것. 화면 옆을 열어주면 실제로 다르게 보인다.

역설적인 건 IMAX 쪽이다. 전 분량을 IMAX 70mm 필름으로 촬영한 놀란의 〈오디세이〉가 상영관을 독점하면서, 한국에서 이 영화의 IMAX 상영은 단 1주로 끝났다. 두 영화 모두에 톰 홀랜드가 나온다. 배우가 자기 자신에게 상영관을 빼앗긴 셈이다. 올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기묘한 장면은 스크린 위가 아니라 스크린 배정표에 있었다.

 

오마주론 — 인용이 감정이 되는 지점

이 영화는 인용의 밀도가 대단히 높다.

오프닝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오프닝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1인칭 웹 스윙, 경찰과의 추격전, 차 위에서의 만담, 버스터 키튼식 충돌 개그까지. 철골에 거꾸로 앉는 구도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왔고, 엘리베이터 개그와 옥상 추락은 〈스파이더맨 2〉에서 왔다. 생체 거미줄을 연습하는 장면에서 그는 '피터2'를 입에 올린다.

추락하는 MJ를 붙잡는 장면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그웬 스테이시를 정확히 겨눈다. 진 그레이를 구하다 총에 맞고, 퍼니셔가 빈사 상태의 그를 안아 옮기는 대목은 코믹스 《시빌 워》의 유명한 장면이다.

인용이 이렇게 많으면 보통 산만해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 축적 자체가 정서로 작동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관객만은 전부 기억하는 이미지들로 채운 것이다. 영화 안에서 그는 잊혔고, 영화 밖에서 우리는 그의 24년치를 기억한다. 이 비대칭이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론 — 크레턴이 가져온 것과 가져오지 못한 것

데스틴 대니얼 크레턴의 필모그래피는 이렇다.

아임 낫 어 힙스터 (2012)
숏 텀 12 (2013)
더 글라스 캐슬 (2017)
저스트 머시 (2019)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2021)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2026)

 

〈숏 텀 12〉는 보호시설 청소년들의 상처를 다룬 소품이었다. 〈더 글라스 캐슬〉과 〈저스트 머시〉도 결국 사람의 내상을 들여다보는 영화였다. 그는 원래 거대한 것을 찍던 사람이 아니다. 작고 부서진 사람을 오래 보던 사람이다.

그 이력은 이 영화의 강점이자 약점으로 동시에 나타난다. 피터의 내면과 관계는 세밀하다. 반면 대규모 액션의 스케일감은 다소 아쉽다. 청춘극의 결이 클리셰에 가까워지는 구간도 있다. 나는 이 트레이드오프를 받아들이는 쪽이다. 스파이더맨은 원래 도시 한 블록의 히어로였으니까.

 

숫자에 대하여

국내 누적 관객은 8월 18일 기준 761만 명을 넘었다.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는 20억 달러를 돌파했다. 2억 2,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생각하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성공이다.

다만 나는 이런 숫자를 볼 때마다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흥행은 작품의 질을 증명하지 않는다. 증명하는 건 하나뿐이다. 이 캐릭터를 보러 갈 준비가 된 사람이 여전히 이만큼 있다는 것. 24년간 세 명의 배우가 거쳐 갔는데도 그렇다는 것.

극장을 나오며

앞줄의 아이는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쿠키 영상을 기다린 것이다. 짧고 다소 성의 없는 쿠키가 지나가고, 아이는 마스크를 다시 쓰고 나갔다.

나는 로비에서 잠깐 서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계속 도시를 지키는 사람. 그건 사실 히어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름이 붙지 않는 노동, 기록되지 않는 성실, 누구도 세어주지 않는 반복. 대부분의 삶이 그렇게 굴러간다.

당신은 어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나에게는 있다. 이 사이트도 그중 하나다. 매번 조회수를 확인하면서, 확인하지 않는 척하면서.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표정이 유난히 오래 남았던 것 같다.

 

브랜드 뉴 데이. 새로운 날. 그 제목은 약속이라기보다 각오에 가깝게 들렸다.

 

https://youtu.be/KRarob7gw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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