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cy — 애니메이션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 Festa
- 2025. 5. 31.
🎬 Annecy — 애니메이션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안시에서,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수 옆의 한 도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이면, 영화의 첫 장면처럼 세상이 열립니다.
그곳은 프랑스 동부의 안시(Annecy).
그리고 매년 6월, 이 조용한 도시는 전 세계 애니메이션인들의 꿈으로 물듭니다.
이름하여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Annecy International Animation Film Festival)
📖 1960년, 호숫가에서 태어난 영화제
이 축제의 시작은 1960년.
유네스코와 국제애니메이션필름협회(ASIFA)의 손에서 태어난 작은 상영회가,
이제는 100개국 이상의 작품과 창작자들이 몰려드는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축제가 되었습니다.
2년마다 열리던 이 행사는 1998년부터 매년 개최로 전환되었고,
2D 셀 애니메이션에서부터 VR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진화와 감성의 깊이를 함께 품은 축제로 거듭나고 있죠.
단순한 상영의 자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 '산업'이자 '언어'임을 증명하는 무대.
그 이름이 곧, 안시입니다.
🤝 MIFA — 창작이 산업이 되는 곳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낭만적 축제 뒤엔
현실적인, 그러나 창조적인 또 하나의 장이 펼쳐집니다.
바로 MIFA(Marché International du Film d’Animation).
이곳은 전 세계의 제작자, 투자자, 배급사가 모여
자신의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를 피칭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며 작품의 생명을 불어넣는 '비즈니스의 심장'입니다.
제가 MIFA를 처음 걸었을 때 느낀 것은,
화려함보다도 절실함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무명의 졸업작품을 소개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세계 시장을 향해 날개를 단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죠.
이곳에서는 애니메이션이 ‘이야기’에서 ‘현실’로 나아갑니다.
🎙 축제를 이끄는 선장, 마르셀 장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마르셀 장(Marcel Jean).
그는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 미학의 큐레이터입니다.
2012년부터 이 축제를 이끌고 있는 그는
다양성과 포용, 그리고 ‘새로운 시선’을 끊임없이 페스티벌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가 안시에 도입한 것들:
- 여성 감독에 대한 집중 조명
-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비주류 지역 애니메이션의 발굴
- VR, 몰입형 콘텐츠 등 새로운 기술 기반 섹션
몇 해 전, 그와 짧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매우 따뜻한 관심을 보이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는 축제를 넘어 ‘언어의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었습니다.
🌍 매년 집중 조명되는 한 나라, 그곳의 언어와 색
안시는 매년 한 나라 혹은 지역을 ‘명예의 주빈국’으로 지정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국가 홍보가 아닌, 그 지역의 역사, 사회, 시각문화를 조명하는 하나의 다큐멘터리이자 예술 기획입니다.
- 2022년: 스페인
- 2023년: 멕시코
- 2024년: 포르투갈
- 2025년: 헝가리
그 나라의 고유한 시각 언어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해석되는지,
또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매해 새롭게 마주하는 것.
그것이 안시가 가진 독보적인 시선입니다.
🏆 수상작의 이야기 — 상을 넘어선 울림
안시에서의 수상은 단지 트로피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관객과 평단이 함께 발견한 ‘마음의 언어’입니다.
- 2023 최우수 장편상: Chicken for Linda!
→ 엄마와 딸 사이의 소소한 갈등을 위트 있게 풀어낸 따뜻한 프랑스 코미디 - 2024 최우수 장편상: Memoir of a Snail
→ 호주 스톱모션 마스터 애덤 엘리엇의 감성적 수작 - Flow (라트비아)
→ 무성의 시공간을 흐르는 듯한 심오한 묵상 - Totto-chan: The Little Girl at the Window (일본)
→ 일본 초등교육의 전설, 쿠로야나기 테츠코의 자전적 이야기의 애니메이션화
이 모든 작품은 국적, 언어, 기술을 넘어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 오세암 — 2004년 안시에서 피어난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도
2004년, 프랑스 안시의 호숫가.
햇살이 수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던 그 여름,
세상은 한국에서 온 작은 애니메이션 앞에서 조용히 숨을 멈췄습니다.
그 이름은 『오세암』.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해 손을 내미는 어린 소년과
그 곁을 지키는 누이의 여정.
정채봉 작가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말없이 전해지는 사랑과 이별, 용서와 기다림을
한국의 색채와 선율로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그 해, 『오세암』은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부문 대상(크리스탈)을 수상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이름을 처음으로 세계 무대 위에 새겼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울었습니다.
국적도, 종교도, 언어도 달랐지만
그 작은 이야기 속의 마음은 모두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찬란한 순간 뒤엔
마치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조용한 아픔이 남아 있었습니다.
국내 개봉 당시,
10만 명도 채 되지 않는 관객.
18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 중 대부분은 회수되지 못했고,
제작자는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집을 팔아
끝내 이 영화를 완성해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오세암』은
영화가 아닌 한 편의 기도였고,
동심이 아닌 어른의 희생이었으며,
이야기보다 진심이 먼저였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세암』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해 여름,
안시의 호숫가에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애니메이션은 기술도 장르도 아니라고.
그것은 누군가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또 하나의 언어이며,
가장 순한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2004년, 한국 애니메이션은 ‘오세암’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작았지만, 분명히 들리는 목소리였다.”
2021.05.19 - [Animation] - 오세암 - 엄마를 만나는 곳,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상작
오세암 - 엄마를 만나는 곳,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상작
부처님 오신날에 아주 딱 맞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느낌의 영화 한편 추천합니다. 오랜만에 추천드릴 영화 장르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이때만해도 애니메이션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allthatcinema.com
벌써 20년이 넘은 이야기네요.
우리나라의 훌륭한 많은 작품들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더 많은 수상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 나의 안시, 그 여름의 기록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어느 해,
나는 호숫가 야외 상영에서 흐릿한 별빛 아래 《밥이 된 꿈》을 보며 울었습니다.
함께 웃고 울던 관객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MIFA에서 만난 프랑스 감독과 스텝들과의 커피 한 잔
그리고, 안시 VIP 파티에 참여한 기억은
내 안의 '이야기'가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말했죠.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지만, 같은 감정을 말해.”
그 말이 안시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인지도 모릅니다.
🔮 안시에서 바라본 애니메이션의 내일
이곳에선
플랫폼의 미래가 논의되고,
국가 간 공동 제작이 활발히 오가며,
장르의 경계와 기술의 가능성이 실험됩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일본과 프랑스, 아프리카 신인 창작자까지…
모두가 평등하게 존재하는 그 공간에서,
나는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세계가 아니라 세상의 거울임을 배웠습니다.
💬 끝맺으며 — 애니메이션이라는 또 하나의 언어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할 수 없던 것을 말하게 하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만드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안시는,
그 언어가 가장 또렷하게 울리는 공간입니다.
“당신이 아직 안시에 가지 않았다면,
세상이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듣고 말하는지를
아직 절반만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 다시 가고 싶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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