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극복하다, <블라인드>
- K-Movie
- 2021. 8. 28.
트라우마의 의미는 '외상(外傷)'이다. 그리스어 Traumat(상처)에서 기원했다. 정신건강 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마음에 깊이 상처를 입힌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가리키는 용어인 이 “트라우마”는 유난히 많은 영화에서 자주 목격되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스토리의 주요 엔진은 결국 주인공의 “결핍”에서 파생되는데 그러한 “결핍”들 중에서도 “트라우마”는 단순한 결핍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강력한 “주인공이 스토리를 이끌어갈 동력(動力)”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트라우마에 대한 영화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으로도 잘 알려진 영화로서 스릴러를 좋아하는 많은 관객들에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는 그런 작품이다.
함께 범인을 추격하던 동료경찰이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추락사 한 후 형사를 그만 둔 스카티는 이후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사다리도 오르지 못하는 심각한 장애를 겪는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대학 동기이자 억만장자인 친구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스카티에게 미행을 부탁한다. 하지만 스카티는 메들린을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스토리는 늘 극심한 불안에 괴로워하던 메들린이 어느 날 높은 망루 위에 올라가 스스로 몸을 던지게 되고, 자신의 고소공포증 때문에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스카티는 극도의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이처럼 주인공이 내면의 상처에 갇혀 괴로워하거나, 또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스토리는 영화의 오래된 원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도 그러한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는” 플롯을 가진 영화인데,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영화 내내 촘촘하게 이어지는 서스펜스로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 <블라인드>이다.
이 작품은 김하늘, 유승호 주연의 영화로서 정작 영화의 예고편을 극장에서 봤을 때만해도 그다지 크게 기대하지 못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고나서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그런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2015년 한중합작 영화로 <나는 증인이다>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블라인드>는 전형적인 “두번째 기회”에 대한 영화이다. 영화는 얼마 전 일어난 뺑소니 사건의 피해자가 최근 연속적으로 발생한 여대생 실종사건의 피해자와 동일인물로 밝혀지며 경찰이 목격자를 찾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수사는 점점 난항을 겪는 가운데 목격자 1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바로 수아이다. 그녀는 한때 촉망받던 경찰이었지만 자신의 실수로 범인도 놓치고 하나뿐인 남동생마저 잃은 채 지금은 자신도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는 특유의 직관과 한때 경찰이었기에 당시 범인에 대한 인상착의를 세밀하게 묘사해준다.
하지만 수아의 진술을 토대로 한창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바로 그날 자신도 현장에서 범인을 목격했다는 목격자2가 나타난 것이다. 유승호가 연기한 목격자 2(기섭)에 따르면 이제껏 수아의 진술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이제 경찰은 두 가지의 엇갈린 증언 속에 하나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눈이 보인다는 게 가장 힘들어"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김하늘은 실제 시각장애인들과 오랜 동안 교감을 나누면서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제껏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마 <블라인드> 속 경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목격자 2가 나타나는 순간, (어쩌면 한때 경찰이었지만 범인을 쫓다가 사고로 동생을 잃고) 자신마저 앞을 보지 못하는 수아의 증언에 대한 믿음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어려움과 더불어, 이후 수아와 기섭의 공조로 차곡차곡 장르 영화의 공식을 따라간다. 비록 첫 만남에서 둘은 티격태격 서로의 증언이 옳다며 다투지만 이내 두 사람은 점점 친해지고 이제 수아에게 기섭은 제 2의 동생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형성되는 순간 연쇄살인마가 그들 앞에 나타나고, 이제 수아와 기섭은 무시무시한 악당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아는 이제 다시는 예전 자신의 눈과 동생을 잃었을 때처럼 두 번 다시 범인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녀는 과연 이 천금같은 “두 번째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
-에필로그 ; 아마 이 작품을 좋아하는 많은 분들은 두 편의 영화를 떠올리실 텐데 하나는 오드리 헵번 주연의 1967년 작품, <어두워질 때까지>일 테고, 다른 한 작품은 2010년 스페인에서 제작된 기옘 모랄레스 감독의 <줄리아의 눈>을 떠올리실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앞을 보지 못하는 여주인공이 엄청난 악당을 무찌르는 영화들로서 연약하고 핸디캡을 가진 캐릭터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여 위협에서 탈출하는 스릴러 장르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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