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서사로부터 새로운 시도, <오후의 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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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올가미>, 마야 데렌

 

오늘은 영화라는 매체의 유형과 형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먼저 영화의 유형(type)에 대해 얘기해보고, 다음번 칼럼에서는 영화의 형식(Style)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영화의 유형과 형식과 관련 보다 자세한 부분에 대해 알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루이스 자네티의 베스트셀러, [영화의 이해]를 추천한다.

루이스 자네티, <영화의 이해>

 

먼저 영화의 유형에는 픽션, 논픽션, 애니메이션, 실험 영화가 있다. 픽션은 다들 아시다시피 허구의 이야기,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모든 가상의 이야기들을 픽션 (fiction)이라 한다. 

 

영화, <매트릭스>, 1999

반면 논픽션은 당연히, 픽션이 아닌 것 (non -fiction),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지칭한다. 예를 들어 <워낭소리>, <북극의 눈물>과 같은 일련의 영화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역시 다들 알고 계시는 <마당을 나온 암탉>, <알라딘>과 같은 여러 장의 그림을 연속 촬영해 만든 영화들을 일컫는다. 

애니메이션, <알라딘>

그럼 남은 것은 실험영화인데, 이게 약간 헷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실험 영화라고 한다면 그 범주가 모호하여 한 단어로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실험영화(Experimental film)를 전위영화(Avant­garde movie)와 동의어로서, 보통의 내러티브를 거부하고 매체 그 자체에 대한 탐구나 작가 개인의 개인적, 추상적 플롯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작품들이라 정의하겠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1943년 미국에서 제작된 마야 데렌의 실험영화 <오후의 올가미>, (Meshes Of The Afternoon)는 아마도 가장 대표적인 실험영화의 예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후의 올가미>, 1943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이프, 떨어진 수화기,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 영화 <오후의 올가미>는 이처럼 난해하고 초현실적이며 다양한 실험적인 표현들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혹자는 이 영화 속 개별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려 한다, 

 

-꽃을 든 그녀의 그림자는 어떤 의미인가?

 

-거울 얼굴의 망토를 입은 사나이는 어떤 의미인가? 

 


 -자신의 입 속에서 열쇠를 꺼내는 장면은 무얼 상징하는가?

<오후의 올가미>, 마야 데렌 본인

아마도 <오후의 올가미>를 어떤 합리적인 논리로 설명하려 한다면 그럴수록 미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가장 필요한 접근은 개별 이미지 하나하나를 분석하려는 접근보다는 작품 전체의 전반적인 표현 양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오후의 올가미>, 1943

<오후의 올가미>를 어떤 서사적인 논리나 스토리의 시간적 진행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이 작품은 인간의 무의식의 흐름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어떤 무의식이나 죽음 직전에 떠오르는 이미지의 단상들.....

 

여성 영화감독이자, “댄스 필름”의 개척자로 알려진 마야 데렌은 이전의 대중 영화들에서 쉽게 발견되는 서사 중심적 구성의 관습에서 탈피하려고 했다. 그녀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하자면,   

    “나는 할리우드가 립스틱에 쓰는 비용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I make pictures for what Hollywood spend on lipstick)” 

-일본의 전통 가부키 선율을 배경으로 마치 초현실적이며 추상화와 같은 영상으로 직조해낸 <오후의 올가미>. 이후 마야 데렌은 다양한 무용에서의 움직임과 영상을 결합한 영화를 제작하며 초기 미국 실험영화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실험 영화에 기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5년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는 "마야 데렌"상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작고하신 천재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은 이 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 기록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마야 데렌의 <오후의 올가미>와 더불어 또 하나의 대표적인 실험 영화로는 루이스 브뉴엘의 아방가르드 필름 <안달루시아의 개>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 역시 난해하기로 따지자면 마야 데렌의 <오후의 올가미> 못지 않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손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피아노 위의 말의 머리, 도입부의 충격적인 비주얼까지, 앞서 마야 데렌의 작품이 한 여성의 악몽과 자아분열이라는 추상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놓은 것이라면, <안달루시아의 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과 언제든 붕괴될 수 있는 논리(logic)나 인과율의 모습을 조롱하기 위해 제작된 실험 영화라 볼 수 있다.

 

<안달루시아의 개>, 루이스 브뉴엘

마지막으로 실험 영화와 관련해 한 작품을 더 소개하자면 “감성의 피는 푸르다”는 이브 클라인의 '블루'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데릭 저먼(Derek Jerman)의 1993년 작품 <블루>다.

 

데릭 저먼, <블루>, 1993

 

   “You see to the boy open your eyes, when he opens his yes and sees the light...."

“소년이 눈을 떴을 때, 소년은 빛을 보았다...”라는 다소 추상적인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블루>는 믿지 못하겠지만 75분 동안 푸른색 프레임만 화면에 보이는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 열차>의 메이슨 총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틸다 스윈튼을 비롯해 몇몇의 배우들이 나레이션을 맡은 이 작품은 작가 데릭 저먼의 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실제 데릭 저먼은 불치병에 걸린 상태였고 병세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겪는 고통들, 세상과 삶에 대한 단상들,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푸른 화면 위에 나레이션으로 입혔다. 아마도 영화 <블루>는 영화 역사상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그러면서도 가장 자기 반영적인 (self-reflective)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데릭 저먼, <블루>, 1993


오늘은 영화의 유형 (type)에 대해 실험영화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사실 영화라는 매체는 그 스펙트럼이 너무나 다양하고 폭이 넓어 영화의 어떤 측면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영화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해석이 달라진다. 어떤 이에게는 치유의 매체이요, 어떤 이에게는 오락을 얻는 매체이요, 또 어떤 이에게는 사색의 매체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라고 생각한다. 오늘 영화의 유형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조만간 이 블로그에서 영화의 형식(style)에 대해서도 다뤄보는 시간을 갖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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