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고전, <자전거 도둑>
- Column
- 2021. 6. 19.
영원한 고전, <자전거 도둑>
지난번 칼럼에서 다음 시간에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에 대해 얘기나눠 보겠다고 했으니 오늘은 신 사실주의-neo realism에 대해 애기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 중심으로 다룰 영화는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7년 작품, <자전거 도둑>입니다. 아마도 이 작품은 사실주의 계열의 영화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난히도 한국과 아시아, 특히 중국과 일본, 인도에서는 사실주의 영화들이 강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장 우리나라 영화만 해도, 이창동 감독,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비롯해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리고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 주자인 지아 장 커 감독과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등-
아마 위에 열거한 감독들의 영화 대부분은 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파생된 네오 리얼리즘의 영향권 아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이탈리아 Neo Realism (신 사실주의) 영화들의 탄생 배경에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된 필름 스튜디오인 치네치타(Cinecitta)가 파괴되어 더 이상 안락한 세트에서 영화를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라 당시 감독들은 안락한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드는 대신 거리로 나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영화 카메라의 소형화 경량화 작업이 이뤄진 시기 역시 1940년대 중반입니다. 이제 더 이상 정형화된 세트에서 거대한 스튜디오 카메라에 발이 묶이는 대신에 보다 가벼워진 35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이제 막 전쟁이 끝난 이탈리아의 거리로 영화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더불어 당시 이탈리아에는 소위 말해 “백색전화 영화들이(white telephonoe films)” 엔터테인먼트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게 말하자면 상류층 부르주아 저택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연애담이 주를 이루는 영화들로서 대중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그들만의 통속적인 멜로 스토리가 대부분인 영화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당시 이탈리아의 사회 분위기 아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경우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와 전쟁 후 이탈리아의 참담한 현실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면에 고스란히 옮긴 <무방비 도시>라는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작품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희생된 레지스탕스 및 한 신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롱 테이크와 자연광을 주로 사용해 전쟁의 참상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로셀리니는 신 사실주의 3부작, <무방비 도시> <전화의 저편 Pais >(1946) <독일 영년 Germania, Anno Zero>(1947)과 같은 명작들을 만들어 네오리얼리즘의 기틀을 세우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의 세기의 로맨스는 아마도 영화사에 있어 가장 아름다운 로맨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로셀리니의 영화 <무방비 도시>에 감동을 받은 그녀는 로셀리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만약 영어 잘하고 독일어는 아직 잊지 않았고, 프랑스어는 아주 잘하지는 않고, 아는 이탈리어는 오직 티아모(사랑해) 뿐인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다면 당장 이탈리아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에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은 화답했고, 이후 두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만나 세기의 사랑이 시작됩니다. 사실 로셀리니 감독과 잉그리드 버그만 관련한 얘기는 이번 칼럼에서 다루기엔 너무 커서 언젠가 시간이 되면 다음번 칼럼에서 다루기로 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자전거 도둑>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당시 이탈리아의 참상을 낱낱이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전쟁으로 온통 폐허가 된 거리에서 수많은 실업자들이 애타게 직업 소개소 직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후 소개소 직원은 오랜만에 일자리가 딱 하나 나왔고 추첨을 통해 일할 사람을 뽑았다고 하며 리치 (Rich)를 부릅니다. (이름도 참 아이러니 하죠? 리치! RIcci)
우리의 주인공 리치가 수백 대 일의 추첨에 당첨이 된 것입니다. 당시 월급이 대략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4인 가족이 이제 더 이상 배곯을 일은 당분간 없어 보입니다. 리치에게 주어진 일은 할리우드 영화의 포스터를 붙이는 일입니다. 헌데 여기에는 단서가 하나 붙습니다. 일을 주기는 하지만 본인의 자전거가 있어야 일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희망도 잠시, 리치는 다시 절망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자전거는 먹고 살기 위해 이미 전당포에 맡긴지 오래됐고 그 자전거를 찾을 돈은 또 어디서 구한단 말입니까..
집으로 돌아와 낙담하고 있는 리치에게 아내는 살기 위한 것이면 무얼 못하느냐 일갈하며 침대보를 팔아 자전거를 다시 되찾습니다. 그리고 이 전당포 장면에서 우리는 수십, 수백억의 예산을 들인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명장면을 보게 됩니다. (*영상 클릭!)
리치가 맡긴 자전거를 찾아주는 직원 뒤로 누군가 먹고 살기 위해 맡긴 보따리를 들고 가는 직원의 모습이 보이고 이 직원의 모습을 카메라가 따라가면 그 뒤로 수백, 수천의 보따리들이 창고 뒤편에 쌓인 모습이 화면에 잡힙니다. 아마도 리치 가정의 안타까운 사정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이탈리아인 모두가 그랬던 것입니다. 이런 가슴 아픈 장면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그 어떤 미사여구 하나 없이 화면에 날것 그대로 나오는 감동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몇 번이고 상관없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 역시 모두 아마추어 배우이거나 거리에서 캐스팅 한 사람들입니다. 먼저 주인공 역의 리치는 철공소 노동자였고, 아들 부루노 역의 엔조 스타이올라는 거리의 고아였고 리치의 아내 역을 맡은 리아델라 카렐은 기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연기의 밀도는 할리우드, 아니 그 어떤 프로페셔널 배우들의 연기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아들 부루노가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주는 그 장면은 장담컨대 그 어떤 영화의 엔딩보다도 감동적인 장면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기 위해 이틀 동안 로마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2차 세계 대전 전쟁에 패한 이탈리아 로마의 허름한 거리와 더불어 수많은 실업자들과 부랑자들로 넘쳐나는 생생한 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전거 도둑>이 진정 위대한 이유는 이 영화가 단순히 경제적 곤경, 피폐한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그리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결국 리치와 부루노가 힘들지만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걸어가는 모습을 통해 아주 작게나마 어떤 희망을 보게됩니다.
<자전거 도둑>은 참으로 이상한 영화입니다. 누구라도 이 영화를 한번 보게되면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절대로 스토리나 비주얼을 잊게되는 법이 없는 영화입니다. 그만큼 영화가 훌륭하다는 뜻이겠지요, 사실 <자전거 도둑>의 가장 커다란 팬 중에 한 사람은 아마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일 것입니다. 그는 1949년 <자전거 도둑>의 자전거 모티브를 권총으로 바꾸어 <들개>라는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만원 버스에서 권총을 잃어버린 형사가 범인을 쫓아가는 과정을 통해 당시 전후 일본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흔히들 사실주의 영화의 특성으로 주제적으로는 사회와의 연관성을 떠올립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실주의 영화들은 주로 가난이나 인플레이션, 노인 문제, 매춘, 저개발 등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이 주를 이룹니다. 또한 제작적인 측면에서도 자연광, 롱 테이크, 고정 쇼트, 아이 레벨, 아마추어 배우, 편집의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는 특성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자전거 도둑>은 가장 모범적인 사실주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전거 도둑>의 위대함을 알기 위해서는 당시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와의 비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50년대 할리우드 영화들의 특성을 보자면 대단히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자극적인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뮤지컬이라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1953>와 같은 작품들이나 <플라이트 투 마스, 1951>과 같이 내용적으로나 서사적으로나 상당히 자극적인 영화들이 선전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네오 리얼리즘 영화들은 이후 너무나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들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자전거 도둑>이 위치해 있습니다.
끝으로 <자전거 도둑>의 시나리오 작가, 체자레 자바티니가 1953년도 인터뷰에서 밝힌 영화에 대한 몇가지 생각으로 이번 칼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네오 리얼리즘은 모든 인간에게 용기를 주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의식을 갖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네오 리얼리즘이라는 용어에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포함하여 기술적인 전문가로서의 제작진을 없애는 것도 함축되어 있다. 지침서, 프로그램, 문법 등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근접촬영이나 역광 촬영 등과 같은 명칭들도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 모두의 각자 개인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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